몬테네그로·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큰누리 2019. 10. 29. 09:13

<발칸 7개국 7일차(2019. 8/3.) 일정 1>

코토르 엘레나 호텔 투숙 - 두브로브니크 투어(구시가지 - 성벽 투어 - 스르지산에서 조망 - 보트 투어) - 크로아티아 Sv Mihovil 호텔 투숙

 

엘레나 호텔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출국장을 5분만에 통과하고, 3분 거리에 있는 크로아티아 입국장 역시 7분만에 통과했다. 국경에서 두브로브니크까지 50분 걸린다고 했다. 국경을 넘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구불구불하고 높은 산 아래로 섬들과 아름다운 바다, 빨간 지붕을 인 가옥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두브로브니크는 수많은 인파와 차량으로 주차 사정이 여의치 않아 길에서 내린 후 정문인 필레 게이트로 입장했다. Pile Gate는 북쪽의 민체타 요새로 추측되는 곳과 가까이 붙어있고 지대도 높아서 이 방향은 유난히 견고해보였다.

먼저 Pile Gate를 통과하여 스트라둔(거리란 의미의 베네치아어, 그리스어 Placa)을 지나치며 주변의 유적과 카페, 골목을 구경했다. 주요 건물(유적)로는 오노프리오 분수(Onofrio's Fountain), 성 세이비어 성당(수도원), 프란체스코 수도원, 시계탑, 스폰자 궁, 성 블라이세 성당과 올란도상, 루자 광장, 두브로브니크 대성당, 렉터 궁전, 몇 개의 광장, 항구 등이 있다.

 

 

<진입하는 산비탈길에서 본 두브로브니크>

 

 

<두브로브니크 정문인 서쪽의 Pile Gate>

두브로브니크 성 서쪽에 위치한 정문으로 구시가지(Old City of Dubrovnik) 출입문이다. Pile Gate에서부터 구도시 중심도로인 300m 길이의 스트라둔(Stradun)이 동서로 도심을 관통한다.   

필레 게이트(Pile Gate)1472년 건축가 파스코예 밀리체비츠(Paskoje Milicevic)가 건축했다. 고딕 양식의 석조 건축물로 아치형의 안쪽 문과 바깥쪽 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게이트 안쪽의 아치형 문 위에는 이 도시이 성인인 성 블라이세(St.Braise) 상이 있다.     

 

 

<두브로브니크(Dubrovnik) 구시가지>

크로아티아 최남단 아드리아 해 네레트바 주 달마티아 연안에 있다. 아드리아의 아름다운 풍경과 중세의 아름다운 건물이 어우러져 '아드리아해의 진주'로 불린다. 7세기에 에피다우른 피난민들이 섬에 정착하며 도시가 형성되었고 지중해의 무역 중심지로 발달했다. 지명의 어원은 크로아티아어로 떡갈나무를 뜻하는 '두브라야(Dubrava)에서 유래했다.

구 시가지는 10~14세기에 만든 길이 4km, 높이 23m의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1667년의 지진으로 도시가 많이 파괴되었으나 아직까지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이 남아있다.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나 1990년 유고 내전으로 도시가 다시 파괴되어 '위험에 처한 세계 유산 목록'에 올랐다. 이후 유네스코와 국제사회의 지원으로 복원되어 1998년 위기 목록에서 해제되었다.

 

 

  <두브로브니크(Dubrovnik) 구시가지 안내도>

 

 

<두브로브니크 오노프리오 분수(Onofrio's Fountain)>

필레 게이트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16각형 돔형의 대형 분수대(식수대)이다. 1400년대 중반에 두브로브니의 식수부족 해결을 위해 만들었으며 루자 광장의 작은 분수와 비교하여 큰 오노프리오 분수로 부른다. 각면마다 동물이나 사람의 표정을 다양하게 새겨 놓았다. 1667년 지진으로 파괴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

 

 

<두브로브니크 성 세이비어 성당과 성스러운 구원 교회>

상당히 낡아 보이는 이 건물은 장미창이 전형적인 이탈리아( 베니스) 양식이다. 사진의 오른쪽의 문으로 들어가면 회랑이 멋진 프란체스코 수도원인데 사전 지식도 없고 인솔자의 안내도 없어서 놓쳤다. 아쉽지만 성벽을 돌면서 조망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두브로브니크 성스러운 구원 교회와 소원을 비는 돌>

성스러운 구원 교회는 최근에 복원했는지 외관이 상당히 깔끔하다. 특히 포치 위의 '피에타 像'이 돋보인다. 

두 번째 사진은 건물 외벽에 있는 '소원을 비는 돌'인데 그곳에 올라가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너무 얕아서 소원을 비는 것은 고사하고 누군가가 잡아주어도 올라가기도 힘들다. 

 

 

 

<두브로브니크 중앙대로 스트라둔(Stradun : 거리란 의미의 베네치아어, 그리스어 Placa)>

윗 사진은 앞으로 나아갈 동쪽 방향과 시계탑, 아래 사진은 지나쳐온 서쪽의 정문과 성스러운 교회와 종탑이다. 구시가지에서 가장 큰 동서를 관통하는 대로이다. 처음에는 도로가 아니라 운하였으나 1400년대 중반에 석회석을 깔아 도로를 만들었다. 도시를 드나드는 통행세 대신 석회석을 받아 이용했다. 1667년 지진 이후 현재처럼 대리석 도로로 바뀌었다.

 

 

 

<두브로브니크 중앙대로 스트라둔(Stradun) 동쪽의 시계탑과 St.Blaise 성당)>

 

 

<두브로브니크 중앙대로 스트라둔(Stradun) 동쪽의 St.Blaise(성 블라이세, 성 블라시오) 성당)>

스트라둔 거리 광장에 있으며 도시의 수호성인인 성 블라이세(블라시오)에게 헌정되었다. 서쪽 출입문 아치 위와 성당 위에 그의 조각상이 있는데, 성당의 성 블라이세는 금빛 주교관을 쓰고 구시가지 모형을 들고 있다. 1368년에 건립되었으며 1369년의 화재와 1667년의 지진으로 파괴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바로크 양식이며, 1706년~1717년에 베네치아의 건축가인 마리노 그로펠리(Marino Gropelli)가 지었다.

앞의 루자 광장에 '올란도 기둥' 이 있다.

 

 

 

<두브로브니크 루자 광장의 올란도 기둥>

루자 광장 중앙(성 블라이세(St.Braise 앞)에 있다. 올란도는 유럽의 도시에서 자유를 상징하는 기사 롤랑이며 두브로브니크는 1418년에 올란도의 기둥을 세웠다. 오른쪽 팔꿈치는 라구사 공화국(구 두브로브니크)의 길이 단위인 1엘(51.1cm)이어서 '두브로브니크의 팔뚝' 으로 불린다.

 

 

<두브로브니크 스트란둔 거리 루자 광장의 스폰자 궁과 시계탑, Luza 궁>

왼쪽은 라구사 공화국 시절에 관세청(무역세관)으로 사용한 스폰자 궁(Sponza), 시계탑 등이다. 사진 오른쪽 앞에 성 블라이세(St.Braise) 성당이 있고, 더 들어가면 라구사 공화국 시절 총독 관저였던 렉터 궁두브로브니크 대성당이 있다.

 

 

<두브로브니크 스트란둔 거리 루자 광장의 스폰자 궁>

스폰자 궁은 1444년에 건설되었으나 지진으로 훼손되어 1928년에 보수한 것이다. 최근에는 고문서를 보관하고 유고 내전 희생자들의 기념관으로 사용된다.

 

 

 

<두브로브니크의 랜드마크인 시계탑>

시계탑 아래의 문을 지나면 다시 문이 나오는데 부두로 연결되는 동문인 플로체 문이다. 시계탑은 31m로 1444년에 건축되었으나 1667년의 대지진으로 무너져 1928년에 다시 건축한 것이다.

 

 

 

<성 블라이세(St.Braise) 성당과 주변의 렉터 궁, 두브로브니크 대성당>

성 블라이세 성당 뒤편(스폰자궁 정면)의 공사 중인 녹색 첨탑 건물은 두브로브니크 대성당, 왼쪽은 총독 관저인 렉터 궁이다. 

 

 

  

<렉터 궁, 두브로브니크 대성당>

정면은 두브로브니크 대성당, 왼쪽은 렉터 궁, 오른쪽은 성 블라이세(St.Braise) 성당이다. 유럽의 성이나 궁은 의외로 작은 것들이 많다.

 

 

 

<라구사 공화국(구 두브로브니크) 총독관저였던 렉터 궁>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한 달씩 돌아가며 총독을 했던 라구사 공화국은 나름 민주적이었던 것 같다. 총독은 1달 동안 바깥과 차단된 채 렉터 궁 안에서만 생활했다고 한다. 내 보기에는 스폰자 궁보다 이곳의 기둥이 더 섬세하고 장식도 아름다웠다.

 

안에 들어가려다 제지를 당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돈을 받는 전시장으로 이용되어서인 듯 했다. 두번째 오른쪽의 천장 돔은 렉터 궁 앞의 성 블라이세(St.Braise) 성당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우리는 입장료와 성벽 투어권만 끊어서 6개나 된다는 박물관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스트라둔 거리가 끝나는 동문(플로체 문)>

이 문 밖에 부두가 있어서 유람용 해적선이나 쾌속정 등을 타고 두브로브니크 바다 삼면을 도는 해상 투어를 할 수 있다. 우리는 성벽 투어 + 스르지산 정상으로 오르는 벤 탑승 + 유람선 탑승 투어 묶어서 100유로를 지불했다.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동문(플로체 문) 밖의 성벽과 부두>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동문(플로체 문) 밖에서 본 시계탑>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동문 안의 문들>

첫번째 사진 문 위에 작은 성 블라이세(St.Braise) 조각상이 있다. 두 번째 사진은 스트라둔(플라차) 거리와 연결되는 문이고, 세번째 문은 교회나 박물관의 문 같다.

 

 

 

 

<두브로브니크 성 안의 조각상>

교회 문 위의 조각상인 듯 한데 확실하지 않다. 두 번째 사진은 교회의 뒷면인데 나는 놓친 군둘리치 광장쪽이 아닌가 싶다. 세 번째 사진은 교회의 (후)문이다.

 

 

 

 

<두브로브니크 성 안의 골목>

 

 

<두브로브니크 스트라둔 거리의 옆 골목들>

골목마다 카페들이 들어서 있다.

 

 

 

<두브로브니크 스트라둔 거리의 카페>

구경하느라 늘 입에 달고 다닌 맥주조차 잊었지만 목이 너무 말라 오노프리오 대분수 근처에서 1.5유로쯤 주고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샤베트처럼 살짝 아삭한 발칸반도의 아이스크림은 우리나라의 달고 느끼한 아이스크림과 달리 상큼하고 양도 많으며 맛있다.

 

 

<두브로브니크 스트라둔 거리(오노프리에 분수) 앞에서 이벤트를 하는 남자>

삼복더위(!)에 공기가 안 통하는 옷을 입고 무언가 의미가 있는 듯 하다. 지나가는 관광객이 돈을 주면 손에 든 장미 같은 것으로 (축복하거나 악귀를 쫓 듯) 그를 내리친다. 여기까지 돌아보고 성벽 투어를 하러 서문 바로 안의 계단으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