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인천

부부목이 있는 강화도 적석사

큰누리 2012. 11. 23. 23:40

<강화도 적석사>

10월 초 쯤에 KBS 아침 다큐 <인간극장>에서 52세 된 아들이 결혼도 안 하고 직장도 접다시피 하며 치매에 걸린 팔순노모를 모시고 사는 내용이 방영됐다. 정말 대단한 분이다 싶었는데 그 아들이 행동이나 사고가 장애인 수준인 노모를 모시고 어렵게 나들이를 한 곳이 바로 적석사였다. 그 때 적석사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 아름다워 꼭 들러보리라 마음을 먹었는데 동호회에서 바로 강화도 사찰을 훑는 답사가 있었다. 얼씨구나 하고 따라 나섰는데 '화면발'과 내 눈으로 본 '사실'은 많이 달랐다.

 

적석사에 조망한 풍경은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몇 가지 기억에 남는 게 있다. '조망'이란 말을 써야 할 정도로 적석사로 오르는 길은 높고 가파르다. 차도는 닦여있지만  어찌나 가파른지 차안에서 몸이 뒤로 넘어가거나 좌우로 기울고 차가 뒤로 밀릴 지경이었다. 가파른 오르막이라면 수종사와 영월 별마로천문대, 무주의 적상산이 기억에 남는데 앞으로는 이곳도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적석사는 고구려 장수왕 4년(416)에 천축조사가 고려산에서 연꽃을 날려 그 꽃이 떨어진 곳마다 절을 창건했는데 붉은 연꽃이 떨어진 곳이 바로 적석사였고, 적석사의 원래 이름은 적련사였다고 한다. 적석사 서쪽의 낙조봉에서 보는 일몰이 빼어나 강도팔경의 하나였고 절에 있는 우물이 깨끗하고 차며 달지만 국난이 닥치면 탁해져 마실 수 없었다고 한다.

역사가 오래 된 사찰임에도 불구하고 1998년의 수해 때문인지 대웅전을 제외하곤 이렇다 할 불당이 없고 나머지 건물은 물론 우물 위에 씌운 불유각조차 모두 막 지은 것처럼 새 것이었다. 대웅전 반지하층 쯤 되는 아래층에는 관음굴이 있는데 살짝 들여다보니 지장보살이 드는 지팡이와 연꽃 봉오리 모양의 창 외에 갖가지 불교 관련 물건을 손마다 든 천수관음(?)이 봉안되어 있었다.

특별히 관심을 끄는 바가 없어 전망이나 하고 내려오려고 대웅전 앞쪽으로 갔다. 가장 기대했던 바였지만 절의 고지나 TV에서 보고 기대했던 것에 비해 특별한 것은 없었다. 정면으로는 맞은편의 산이, 오른쪽으로는 서해가 모두 어설프게 조망되었다. 실망스러워 뒤돌아 나오는데 나무둥치를 잘라낸 자리에 허수아비 같은 게 있고 그 위에 염주목걸이를 걸어놓은 게 보였다.

 

뭐지? 자세히 보니 헉, 가슴이 늘어진 여인의 형상이었다. 그 뒤에는 같은 종의 나무가 한 그루 더 나란히 서 있고 '부부목'이란 제목 하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夫婦木 
그들은 함께 서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자가 아니라
각각의 자리에서 한 곳을 바라보는 자다.
 
처녀는 아내로되 어머니가 되고
총각은 남편이로되 아버지가 되었다.
 
인연 따라 돋은 새 살들이
어머니의 모습이며 아버지의 모습이며
그 틈새 태중의 아이의 모습이다.
 
이를 일러 夫婦木이라 이름 하니 
이곳 스치는 인연이여!!
 
그대 곁 나여서 한없이 미안하고
내 곁 그대여서 한없이 고마워하며
 
적석사 법당 앞 수수백년 기켜온 부부목 닮아
부디 부디 행복하게 해로하시라.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그리 되시라!

 

 

<강화도 고려산 적석사>

 

 

<주차장에서 사찰로 오르는 계단>

 

 

 <적석사 계단 옆의 감국>

 

 

<적석사 범종각>

 

 

 <범종각 아래의 텃밭>

가파른 지형을 다듬어서 좁은 땅이지만 알뜰하게 김장용 배추와 무우를 심었다.

  

 

<텃밭 반대편의 낙조봉으로 오르는 길>

낙조봉에 올랐더라면 기대한 만큼 툭 트인 서해안을 볼 수 있었을런지...

 

 

<적석사 대웅전과 내부>

적석사에는 대웅전 말고는 특별히 불전이나 불당이 없다. 

 

 

 

 

<대웅전 아래층의 관음굴>

 

 

<적석사 우물과 불유각>

젖유(乳)가 들어간 이름이 재미있다. 이 우물이 바로 평소에는 말고 시원하지만 국난이 닥치면 탁해져서 못 마신다는 그 우물?

 


<적석사에서 내려다 본 강화도 풍경과 서해안> 

 

 

 

<부부목>

머리 크기를 키우면 훨씬 더 실감이 날 것 같은데... 왼쪽 뒤가 남편목인 모양이다.

 

 

<적석사 사적비>

숙종 40년(1714)에 건립되었으며 불교의 전래 및 중건, 중수 상황과 고려시대 몽골 침입에 대항하여 강화도로 천도했을 때 적석사가 왕의 거처로 사용되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