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괴산의 여우숲1

큰누리 2012. 12. 21. 19:39

<괴산군 칠성면의 여우숲>

운전을 좋아하지 않다보니 남과 함께 하거나 얹혀가는 여행이 대부분인 나는 이상하게 충청북도와는 인연이 없었다. 이번 여름, 가만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에 직장동료들과 드디어 충북 칠성면에 있는 여우숲을 갈 수 있었다.

출발하면서도 도대체 '여우숲'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이도 알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여우가 사는 숲인가? 우리나라에 여우가 있었나? 궁금함이 꼬리를 물었다. 

 

충주호에서 유람을 하고 괴산에서 저녁을 먹은 후 일행 대부분은 2차로 노래방을 갔지만 나는 전날의 과로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어서 숙소가 있다는 여우숲 선발대(?)로 나섰다.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산길에서 길을 못찾아 헤매기를 몇 번, 여우숲 주인이라는 분과 겨우 통화가 되어 마중나오는 길목에서 만났다. 보이는 것이라곤 털털대는 소형 트럭과 우리 차에서 나오는 라이트가 전부였다. 제대로 굴러갈지 의심스러운 주인의 트럭 짐칸에 부실한 선발대원(!) 서너명이 올라타고 일행의 배려로 나는 운전석 옆자리에 끼었다.

산의 숙소로 오르는 동안 희미한 불빛으로 보이는 나무를 보고 중얼거리는 나를 보고 대꾸를 하는 운전석의 주인이란 분은 차분하고 조용하다 못해 엄숙하기까지한, 예삿 사람 같지 않았다. 하지만 낮은 목소리로 설명을 할 때 만큼은 그 누구보다 부드러웠다. 

 

부실한 트럭 위에서 길바닥의 충격을 온몸으로 받으며 오르막과 구불길을 돌아 꽤 높은 산을 다듬은 작은 평지에서 주인은 우리를 내리게 했다. 앞에는 깔끔하고 예쁜 산장 같은 건물들이 몇 개 있었다. 여우숲은 어디 있나? 설마 저 건물이 여우숲? 그러고 보니 뜰 한켠에 잔디로 만든 어린왕자와 여우 조형물이 있었다.

 

방 배정 종이를 불빛에 비춰가며 선발대들은 각기 흩어졌다. 나는 불빛이 흘러나오는 건물 중앙 앞 뜰 나무텍에 그냥 널부러졌다. 바람 한점 없었지만 움직이지 않으면 나름 시원했고 숲 내음을 맡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인은 우리에게 방 위치만 간단히 설명하고 중앙의 사무실로 들어가서는 무언가 열심히 컴퓨터에 기록 하는 것이 통유리 너머로 보였다.

먼저 방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다 씻고 나오도록 나는 혼자 뜰에 앉아있었다. 일행들이 수건을 찾았지만 방에 수건이 없었다. 자연보호를 위해 최소한의 것만 제공하기 때문에 수건은 제공하지 않는다는 주인의 대답에 어이없어 하며 투덜대고... 깊은 산속 밤의 고요와 예쁘고 아담한 건물, 공사장 분위기가 남아있는 날 것 같은 주변의 풍경이 묘하게 다가왔다.  

 

혼자 앉아있는데 어딘선가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또 뭐지, 이 밤에 어디서 발전기라도 돌리나?

웅웅거리는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뭔가 시커먼 것이 눈앞에 '툭'하고 떨어졌다. 세상에...

이렇게 요란해서 '장수풍뎅이'라는 이름이 붙었나보다! 어처구니 없게 내가 모터 소리로 착각한 것은 장수풍뎅이가 날아오는 소리였다! 어두워서 자동으로 디카 플래쉬가 터져도 20여컷을 촬영하는 동안 그 장수풍뎅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시원한 숲 바람을 기대했지만 마냥 끈적여서 씻으러 숙소로 올라갔다. 나무로 지은 다락방이 있는 자그마한 숙소는 낮의 햇볕으로 달구어져 씻어도 더위가 가시지 않아 결국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그 만큼 무더운 날이었다.

멀리 아래로 가물가물 보이는 불빛 보는 것도 지칠 무렵 일행들이 들이닥쳤다. 그리고는 컴컴한 데서 자신들의 방을 찾느라 난리법석...

 

사전의 배정과 관계없이 머릿수를 맞춰 대충 끼워 자는 것으로 교통정리를 했지만 더위로 잠을 이루지 못한 나는 밤새 잠을 설쳤다. 모기 때문에 방충망이 없는 창을 열 수 없는 친환경적인(!) 숙소에서의 더위는 고통이었다! 숲도 좋고 자연도 좋지만 보조기구 없이 더위 때문에 잠을 설친 내가 이상한 것인지 나름 기대를 했던 자연 속에서의 하룻밤이 열악한 여건 때문에 기대에 못미친 것인지 헛갈렸다.

새벽이 되자 조금 선선(!)해졌고 자리에서 뒤척이던 나는 차라리 밖이 낫겠다 싶어 밤새 잠을 설쳐 뻑뻑한 눈을 비비며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어젯밤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던 숙소 주변 풍경들이 운무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주변에 깔린 누리장나무꽃이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여명의 안개 속에서 혼자 산책을 하면서 올 한해 동안 바쁘고 지쳐서 잊고 있었던 자연과 모처럼 재회를 했다. 

 

그렇게 아침 이슬을 맞으며 산책을 한 것이 얼마 만이었던가? 아침 잠 때문에 좀처럼 활짝 핀 꽃을 보기가 어려웠던 호박꽃들도 암꽃, 수꽃 가려가며 실컷 보고 산새도 (놀랄까봐) 훔쳐보며 다시 숙소로 돌아올 때 쯤엔 훨씬 더 짙은 안개가 산을 에워싸는 중이었다.

 

 

<여우숲의 아침>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에 여우가 멸종되었다. 따라서 여우숲에는 여우가 살지 않는다. 내가 궁금해 했던 '여우숲'이란 이름은 운영자(우리를 트럭에 태워 온) 김용규씨 잘 나가던 사업을 접고 괴산의 첩첩산중으로 들어와 여우가 되살아오는 날을 기다린다는 염원을 담아 지은 생태 자연학교이다. 그래서인지 메인 건물 앞에 잔디를 덮은 어린왕자와 여우상이, 입구에는 여우상이 있다.

 

 

 

<여우숲의 층층나무관>

층층나무관은 여우숲 생태학교의 메인건물이고 아래에 별채(졸참나무관)와 주인집이 있다. 왼쪽의 나무로 된 계단 위 발코니는 휴식 장소겸 식당 같은 곳이다.

우리는 아침으로 가격이 좀 비싼 편인 올갱이해장국을 먹었는데 개운했다. 흠이라면 식사 준비를 하는 분이 손님이 있을 때만 출장 형식으로 올라오는지 음식 준비하는 시간이 길다는 점.

 

 

<여우숲 층층나무관(본관) 앞>

오른쪽에 보이는 누리장나무가 여우숲 주변에 유독 많다. 예민한 사람에게는 약간의 누린내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향기가 농염하다.

 

 

<멀리 보이는 여우숲 층층나무관(본관)>

 

 

<여우숲의 인삼밭?>

지역으로보나 구조로 보나 인삼밭 같은데 돈을 목적으로 바둥거리며 짓지 않아서인지 여우숲의 농사는 모양새가 대충 이렇다. 잡초 반, 작물 반... 

 

 

<조망이 가장 아름다운 여우숲 주인집>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묵은 숙소는 이 건물 뒤편 윗쪽에 있다. 황토로 지은 아담한 집인데 가장 내 마음에 들었다. 

 

 

<여우숲 입구의 장독대>

판매용인지 식당에서 사용하는지 모르지만 상당한 양이다. 특이한 점은 건물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

 

 

  

<여우숲 입구의 여우상>

 

 

 

<여우숲 산책길들>

이 길 말고도 몇개인가 다른 이름의 산책로가 있다. 이 산책로 이름이 '꿈꾸는 언덕'인데 산 자락을 다듬어 만든, 얼마 되지 않은 길이라 아직은 꿈을 꿀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이날 아침의 짙은 안개 덕택에 결과적으로 꿈꾸는 언덕이 되었다.

 

 

 

 

 

 

<산책길에서 만나 오목눈이(?)>

정말 앙징맞다. 이 녀석이 놀랄까봐 조심조심 접근...

 

 

<1시간 여만에 아침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여우숲 층층나무관>

새벽에 나갈 때보다 안개가 훨씬 더 짙어졌다.

 

 

<여우숲 층층나무관에서 본 아래쪽 마을 풍경>

 

 

 

<윙윙거리며 나는 소리가 너무 요란해서 모터 소리로 착각한 장수풍뎅이>

나를 위해서 그랬는지(^^) 이 자세로 조용히 있다가 어느 틈엔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