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203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물2 (가야, 신라,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가야의 토기는 지역마다 형태와 특징이 다르다. 금관가야는 아가리가 밖으로 꺾인 굽다리접시와 손잡이가 달린 화로 모양 토기가 대표적이며, 아라가야는 불꽃 모양의 굽구멍이 뚫린 굽다리접시가 대표적이다. 대가야는 굽다리접시가 가로로 넓고 납작하여 안정감을 주며, 원통형 그릇받침에는 뱀이나 고사리 모양과 같은 긴 띠가 세로로 붙는 것이 특징이다. 소가야의 경우 그릇받침과 항아리의 아가리 끝이 수평으로 꺾여 벌어진 것이 특징이다. 비화가야는 그릇 뚜껑에 애벌레 무늬가 장식되며, 접시는 얕은데 비해 굽다리가 굵은 굽다리접시가 많다. 무덤 부장품 상형(象形)토기>상형토기는 사람, 동물, 사물 등의 형태를 본떠 만든 토기를 말한다. 가야의 상형토기는 집, 배, 짚신 등의 사물이나 새, 말, 사슴 등 동물을 본뜨고..

서울특별시 2025.06.27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물1 (구석기시대~고구려, 백제)

3월 13일, 모임이 있어서 국립중앙박물관에 들렀다가 모임이 끝난 후 본관 1층을 집중적으로 관람했다. 전에도 가끔 들리긴 했는데 예전에 비해 전시구성이 많이 달라지고 내용도 바뀐 부분이 있었다. 특별전은 보러 종종 들렀지만 그 만큼 내가 오랫동안 그 곳을 안 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글은 1, 2부로 나누어 올릴 예정이다. 1부는 선사시대, 고조선, 삼한, 고구려, 백제에 관한 내용이고, 2부는 가야, 신라,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에 관한 내용이다.돌 뒤지개, 사슴 어께와 턱뼈, 화살촉, 공이와 홈돌, 숫돌 등. 신석기인들은 바다나 강에서 조개를 잡거나 낚시질, 작살이나 그물로 고기를 잡았다. 부산 동삼동이 대표적 유적이다. 윗단 : 흙인형, 조개가면, 멧돼지 그림을 새긴 토기 조각 아랫단 : 간돌..

서울특별시 2025.06.26

국립고궁박물관 전시물 2

국립고궁박물관 전시물 1 에 이어... ≪국립고궁박물관 전시물 2≫ 국왕의 일상복 곤룡포>국왕의 일상복인 곤룡포와 익선관, 목이 긴 신발(木靴), 옥으로 장식한 허리띠인 옥대(玉帶)이다. 곤룡포에는 가슴, 등, 어깨에 다섯 개의 발톱을 가진 오조룡(五爪龍)을 달았다. 왕실 여성의 예복, 왕비의 당의(唐衣)와 스란치마>스란치마는 조선 여성의 예복용 치마로 예복용과 평상용이 있으며, 적의(翟衣)나 원삼(圓衫), 당의(唐衣) 등의 예복 차림을 할 때 같이 입는 치마이다. '스란'은 각종 무늬를 금직이나 금박으로 장식한 단을 말하며, 스란이 두 단이면 '대란치마'라고 불렀다. 왕손의 까치두루마기와 자적용포, 공주의 당의와 스란치마>까치두루마기는 왕손이 입은 어린이용 두루마기로 남아는 남색 고름을, 여아는 홍색 ..

서울특별시 2025.06.19

국립고궁박물관 전시물 1

* B1F : 궁중서화, 왕실의례, 과학문화, 열린 수장고, 고궁배움터* 1F : 대한제국, 기획전시실 Ⅲ, Ⅳ, 어차, 디지털 문화유산 나눔방, 뮤지엄숍* 2F : 기획전시실 Ⅰ, Ⅱ, 조선국왕, 왕실생활 대비, 왕, 왕비, 왕세자, 왕세자빈이 행차 때 탔던 정식 가마. 왕, 왕세자, 혹은 왕실 어른이 장거리 행차 때 탔던 가마로 정조의 화성 행차 때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탔던 것과 비슷. 어좌에는 왕실을 상징하는 붉은 칠을 한 후 금색 용과 구름을 그리고 모서리에 용머리를 장식했다. 정전이나 편전에서 어좌 위에 설치된 보개는 국왕의 상징인 용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사진은 경복궁 근정전의 보개. 국왕의 자리 뒤에 놓는 병풍으로 다섯 개의 산봉우리와 해, 달, 소나무, 물이 그려져 있다. 윗사진은 태조에..

서울특별시 2025.06.19

열린송현녹지광장의 '역사의 터, 예술로 깨어나다' 전시회

*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송현동 48-9* 열린송현녹지광장의 역사적 변천 : 열린송현 녹지광장은 경복궁과 종로 사이에 있는 광장이다. 이곳은 우리나라 근대사의 흔적이 담긴 곳으로 일제 강점기에 식산은행 사택이 있다가 해방 후에는 미군과 미대사관 숙소로 이용되었고, 1997년 우리 정부에 반환되었다. 그 뒤로 높은 담장에 둘러싸인 채 방치되다가 한국주택공사가 구입했고, 2022년 다시 서울시가 구입하여 녹지광장으로 개방하였다. * 송현동 역사변천과 가성각 : 현재의 송현동 일원은 1392년 조선 건국 이래 풍수지리 사상에 따라 국가가 직접 소나무를 심어 관리했기 때문에 송현(松峴)이라고 했다. 이후 나라의 곳간인 군자감(軍資監)의 분감, 상인들의 과일가게인 우전(우전)과 여염집들이 들어섰고, 19..

서울특별시 2025.06.15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3(공예)

≪일상을 예술로, 비엔나 디자인 공방의 탄생≫구스타프 클림트와 그의 동료들은 공예도 예술과 동등한 지위를 가져야 하며, 일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예술은 없다고 주장했다. 비엔나 분리파 전시회에서는 회화, 공예, 조각, 포스터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함께 전시하였고, 예술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임을 대중에게 알렸다. 1903년 콜로만 모저와 요제프 호프만은 일상의 물건도 예술적으로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비엔나 디자인 공방을 설립했다.비엔나 디자인 공방의 초기 디자인은 19세기 말 유럽에서 유행한 장식 미술과 아르누보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곡선 형태가 두드러졌다. 그러나 곧 기능성과 미학의 조화를 강조한 *영국 예술공예운동의 영향으로 기하학적 단순함을 중시하는 디자..

서울특별시 2025.01.23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2(오스카 코코슈카, 에곤 실레)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전시 기간 : 2024.11.30(토) ~ 2025.3.3(월)전시 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부제 :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실레까지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내가 왜 그림을 그렸는지에 대한 답은 그림 그 자체에 있다"1886~1980. 빈 응용예술대학교에서 수학하다 1910년 베를린으로 이주하여 표현주의 운동에 참가하였으며 1차 세계대전에 종군하였다. 전후에는 6년 가량 드레스덴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유럽, 아프리카, 중동 등을 돌며 풍경화를 제작하였다. 나치의 압박으로 1938년 런던으로 망명하여 작품활동을 했다. 젊은 예술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표현주의 경향의 작품을 제작하던 오스카 코코슈카는 1900년대 예술가들의 초상화..

서울특별시 2025.01.23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1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전시 기간 : 2024.11.30(토) ~ 2025.3.3(월)전시 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부제 :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실레까지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입장 대기줄>현장에서 입장권 구입은 불가하고 인터넷으로만 예매해야 하는 것으로 아는데 인터넷 예매도 경쟁이 치열하므로 며칠 전 예매 필수! 실내 포스터의 모델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수풀 속 여인'.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실 배치도(유도 동선)>전시작품이 워낙 많고(191점) 전시장이 촘촘해서 사전에 전시장을 좀 파악하고 들어가야 덜 혼란스럽다. 자칫하다 전시 일부를 놓칠 수도...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 개요>       수풀 속 여인(구스타프 클림트)..

서울특별시 2025.01.22

북촌 답사2- 가회동 백인제 가옥, 가회동성당, 서울 재동 백송

≪손병희 선생 집터≫서울 종로구 가회동 170.손병희 선생(1861~1922)은 구한말의 천도교 지도자이자 3·1운동을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1897년에 동학의 3대 교주가 되었으며, 3·1운동 때에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으로 3·1운동을 주도하였다. 이곳에서 1919년 2월 28일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었다. ≪가회동 백인제 가옥≫지정번호 :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 22호.소재지 : 서울 종로구 북촌로7길 16 (가회동).북촌의 높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백인제 가옥은 한성은행 전무였던 한상룡에 의해 1913년에 건립되었다. 주변가옥 12채를 사들여 마련한 907평의 큰 대지에 압록강 흑송을 사용하여 건축하였다고 한다. 사랑채와 안채가 확연히 분리되는 전통한옥과 달리 ..

서울특별시 2024.12.16

북촌 답사1- 안(국)동별궁 터, 안동교회, 윤보선 가옥, 정독도서관

≪안(국)동별궁 터≫구 풍문여고, 현 서울공예박물관.처음에는 세종의 막내아들 영응대군의 집이었으며 세종은 이곳에서 승하했다. 영응대군이 아들 없이 죽자 부인은 성종에게 집을 바쳤고, 성종은 부친인 의경세자의 사당(의경묘)을 만들고 형인 월산대군이 봉사하도록 했다. 중종 때 혜순옹주, 인조 때 영창대군의 누나인 정명공주, 숙종 때 연령군의 궁가가 되었다. 고종 때 왕세자 순종의 가례소(嘉禮所)가 되었고, 일제강점기에 민영휘와 최창학에게 팔렸으며 1944년 민영휘의 증손인 민덕기가 증조모 안유풍(민영휘의 부인)의 유지에 따라 폐교된 정신여학교를 인수하여 이곳에 풍문여학교를 설립했다. 현재 서울공예박물관이 들어서 있다.안국동 별궁은 일제 강점기인 1936년에 민간에게 매각되면서 건물들이 팔려나갔다. 경기도 고..

서울특별시 2024.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