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이탈리아4-베네치아 곤돌라 투어, 비발디 성당

큰누리 2016. 2. 11. 05:17

우리가 여행한 1월 중순은 유럽 여행의 비수기이다. 뜨거운 태양을 좋아하는 유럽인들은 춥고 비가 잦은 겨울에 남부 유럽(이탈리아나 스페인 등)을 거의 찾지 않고 대신 그 자리를 한국인들이 채운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도 한국인들이 가장 많았고, 폼페이의 규모가 큰 식당이나 로마의 마짱꼴레집은 전원이 한국인일 정도였다.

내 경우 사람에 치이는 것을 아주 싫어하고, 건강 때문에 (더우면 몸이 지쳐서 관광이 힘들다) 겨울을 선호한다. 건강이 달리는 사람은 살짝 추운 날씨가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기에 가장 좋다. 서울성곽 완주(2번에 나누어 성공했지만)나 경주 남산을 완주한 것도 다소 쌀쌀하고 맑은 초겨울이었다.

몇 년째 터키 여행을 벼르면서 못간 이유도 날씨가 영향이 컸다. 터키는 내륙에 가깝기 때문에 겨울은 최소한 우리나라 만큼 추울 것이고, 여름은 너무 더울 것 같아 망서리다 보니 매번 놓쳤다. 운 나쁘게 신청을 했는데 성원 미달로 몇번 깨졌고 요즘은 IS 때문에 더 어렵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 느낀 점인데 다른 관광국은 몰라도 이탈리아는 빠른 시간 안에 중국인들에게 점령(!) 당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탈리아는 명품의 나라가 아닌가! 유적만 많은 곳은 중국인들이 거의 찾지 않는다. 동남아의 경우 태국, 그 중에서도 유적이 집중된 관광지는 중국인이 거의 없고, 번화하거나 쇼핑 명소가 많은 곳은 중국인들이 많다.

 

≪곤돌라와 곤돌리에≫

곤돌라는 '흔들리다'라는 뜻이라고... 장식을 제외하고 오직 나무로만 수작업을 하기 때문에 제작 기간이 1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곤돌라의 색이 모두 검정인 이유는 베네치아의 귀족들이 부를 과시하기 위해 지나치게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을 막으려고 16세기에 법으로 정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곤돌라 사공인 곤돌리에는 여름에는 영화 <빠삐용>의 죄수복 같은 줄 무늬 상의를 입었던데 겨울에는 검정 점퍼와 검정바지, 검정 모자 차림이다. 모자는 안 쓰는 경우도 많았지만 통일된 복장을 갖춘 이들은 단정해 보였다.

우리의 곤돌리에는 인상이 험한 데다 (사진을 찍어서인지) 나를 계속 주시해서 감시 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택시 기사가 외국인에게 불친절하거나 바가지를 씌우면 그 나라 인상은 끝이라는데 택시 기사만 그 나라의 인상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곤돌리에에 대해서는 워낙 많이 포스팅을 하고 방송을 타서 잘 알려져 있다. 나는 JTBC의 <내 친구 집은 어디인가> 이탈리아 편에서 보았다. 운동 잘 하고, 체격 좋아야 하고, 언어도 되어야 하는 등 자격시험이 거의 고시수준이라고 한다. 연봉이 우리 돈으로 2억 정도라니 현재 파산 위기에 처해서 실업자들이 득실대는 이탈리아에서 그 정도면 잘 나가는 중소 기업가 수준이다. 

 

 

곤돌라 투어

산 마르코 광장 앞 선착장에서 샛길 골목 운하 1개를 거친 후 살루테 성당 앞을 돌아오는 투어였다.

걸린 시간은 30분 남짓.

가격은 옵션으로 1인당 50유로(한화로 치면 7만원) 지불.

곤돌라 승선 정원은 곤돌리에 빼고 6명이다.

 

그 시각에 곤돌라를 탄 것은 우리 일행과 다른 한국팀, 외국인 1팀 뿐이었다. 투어 중에 본 곤돌라는 모두 정박 중이었다.

곤돌라는 주로 산 마르코 성당 주변에만 있었다. 곤돌라는 일반 보트와 크게 다를 게 없지만 날렵한 선체로 좁은 운하 골목을 돌아볼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베네치아 운하 골목을 연구하는 게 아니라면 30분 정도 타면 딱 좋다.

 

곤돌리에가 노래를 한다고? 우리 곤돌리에를 보시라, 노래하게 생겨 먹었는지... 하긴, (그 사람들 입장에서) 날은 춥고 영업도 잘 안 되는데 노래를 하고 싶겠는가? 이번 여행에서 아시아 관광객에게 오만하다는 유럽인의 전형을 우리 곤돌리에와 첫날 묵은 idea 호텔의 '시뇨리타'라고 고함을 지르던 서빙하는 노파에게서 보았다. 노래를 잘 하는 곤돌리에도 있겠지만 따로 (돈을 내고) 악사를 부르기도 한다고 들었다. 우리가 투어하는 동안 노래는 커녕 골목을 지나치면서 음악소리조차 못 들었다.

 

 

 

<베네치아 운하의 교통수단들>

우리가 타고 있는 곤돌라, 전방 왼쪽은 수상택시, 오른쪽은 수상버스이다. 오른쪽의 노란 두줄이 있는 부스 같은 곳은 매표를 하는 곳이다.

 

 

<곤돌라 골목 투어>

투어 중 수로를 가로지르는 다양한 꼬마 다리를 볼 수 있다. 곤돌리에는 TV에서 본 것처럼 간혹 벽에 한 발이나 손을 짚고 노를 젓기도 한다. 수로 양쪽의 집들은 수백년, 혹은 천년도 전에 지어서 벽이 헐고 칠이 벗겨진데다 지층 일부 벽들이 물에 잠겨 음산하기까지 했다. 

물 위에 인공섬을 세우고 삶을 일군 베네치아인들의 저력이 느껴졌지만 생각처럼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골목에 있는 집들 중 사슬로 감고 자물쇠를 채운 집이 꽤 되었는데 낡고 물이 자주 넘쳐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앞>

운하 건너의 건물은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카테드랄)이다. 지붕 돔이 다섯개나 되는 산 마르코 성당은 전망대에 올라야 제대로 보이기 때문에 운하에서 보면 이 성당 외관이 가장 아름답다.

 

우리는 베네치아 터미널에서 산 마르코 광장으로 들어올 때 여행사에서 제공한 수상택시를 탔고, 옵션으로 곤돌라 투어를 했으며, 섬을 나갈 때는 수상버스를 탔다. 베니스 운하를 운항하는 모든 교통편을 다 이용한 것이다. 수상버스는 이곳을 돌아 우리가 들어올 때 지난 메인 운하를 지나지 않고 살루테 성당 뒷길로 나갔다.

들어오고 나가는 교통편을 바꿨더라면 훨씬 여유있게 메인 운하 양쪽에 있는 중요한 건물들을 감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오는 수상버스에서 비가 오고 막힌 유리창을 통해 동영상 촬영을 했는데도 상태가 아주 좋았다. 수상버스는 요동이 거의 없고 비교적 서행하기 때문에 주변을 여유있게 볼 수 있었다.

 

 

 

 

 

 

 

<두칼레 궁전 옆의 '탄식의 다리'>

곤돌라에서 내려 산 마르코 광장을 한번 더 돌아본 후 두칼레 궁전 앞에서 비발디 성당 앞까지 단체 관광 중이다. 왼쪽 건물은 두칼레 궁전, 오른쪽 건물은 감옥이다. 감옥으로 이송되는 죄수들이 언제 다시 밖으로 나올지 탄식을 하며 건너서 붙은 이름이라고... 감옥이 궁전못지 않게 튼튼해서인지 이곳을 탈옥한 죄수는 전설 속의 카사노바 말고는 1명도 없다고 한다.

 

이런 물길은 좌우 양쪽 건물이 있는 섬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베네치아는 118개의 섬 연합체이고 몇 발짝 건너면 되는 작은 다리로 연결되었으니 섬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다.

 

 

<탄식의 다리 앞에서 본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

왼쪽은 수상택시 선착장, 오른쪽은 곤돌라 선착장이다. 수상택시 왼쪽에는 우리가 탄 수상버스 승강장이 있고, 이곳 말고도 선착장이 더 있다.

 

 

<섬과 섬을 잇는 통로>

양쪽 벽 상태가 심란한데 이것이 현실이다! 다리가 아닌 이런 통로는 나중에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서 더 보았다. 우피치 미술관과 옆 건물을 잇는 긴 통로였는데 메디치 가문 사람들이 암살자들을 피해 달아나기 위한 비밀통로였다고 한다.

 

 

<두칼레 궁전에서 비발디 성당 사이의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동상>

가리발디와 함께 1800년대 중반에 이탈리아를 통일한 근대 최초의 황제로 이탈리아의 영웅이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동상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 업적을 기리기 위함인지 로마에 그의 이름을 딴 엄청난 규모의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박물관이 있고, 판테온 안에는 그의 무덤(관)이 있었다. 밀라노 성당 옆에 있는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도 규모가 엄청났고 천정, 바닥에 볼거리가 많았다.

베네치아의 상징인 날개 달린 사자상 옆의 여인상 옷의 섬세한 무늬가 실제 옷감 저리 가라 수준이었다.

 

 

 

<비발디 성당 옆 골목 운하와 산 조르지오 델 그레치 성당 종탑>

동로마제국이 오스만 투르크에게 멸망한 후 망명한 비잔틴인들이 이 성당 주변에서 거주했다고 한다. 이 종탑도 피사의 사탑처럼 약간 기울어 있다.

 

 

<비발디 성당(키에자 델라 피에타)과 비발디 보육원>

비발디 성당은 공사 중이라 하얀 휘장을 쳐놓았다. 다른 공사장과 달리 휘장이 매끈해서 (다른 곳은 원형 사진으로 가렸다) 대형 전광판을 설치하고 비발디 관련 영상물을 상영하는 것으로 착각했다. 비발디는 이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고, 옆 고아원(보육원)에 사무실이 있었으며 그곳에서 대표작인 <사계>를 작곡했다.

오른쪽에 비발디가 고아들에게 음악을 가르친 시립 고아원(현재의 Metropole 호텔)이 있고, 나는 놓쳤지만 그 사이 비발디 성당 벽에 사생아를 버리던 구멍이 있다. 당시에 부유했던 베네치아에서는 축제가 자주 열렸고, 그 때마다 사생아가 많이 태어났으며 그 아이들을 이곳에 많이 버렸다고 한다.

 

비발디 성악가는 많아도 작곡가는 드문 이탈이아에서 단연 독보적인데 이곳 출신이다. 1678년 베네치아 산 마르코 극장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지오반니 바티스타 비발디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당시 이탈리아의 명문 음악 집안이었던 비발디 아버지는 아들에게 바이올린을 지도했고, 비발디는 바이올린 연주 대가로 성장했다. 15세 때 성직자의 길로 들어서서 25세 때 사제 서품을 받은 후 같은 해에 베네치아 여자 보육원 바이올린 교사로 발령 받았다. 보육원이 음악교육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비발디는 이곳에서 원생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피에타 관현악단을 구성해 지휘했으며, 여러 곡을 작곡했다.

 

 

 

<수상버스 타고 우리 버스가 대기 중인 터미널로...>

 

 

<이틀째 숙소인 베네치아의 Holiday Inn Hotel>

우리가 묵은 다른 호텔에 비해 객실이 상대적으로 좀 작았다. 저녁 식사는 스파게티 + 생선튀김 + 튀긴 감자 몇 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