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91

22.05. 당진 합도초등학교 교정의 등꽃

가족들과 당진, 서산을 1박 2일 코스로 다녀왔고 조카와 딸이 코스를 짰는데 당진이 메인 코스였다. 서산은 볼거리가 많아 답사 차 몇 번 들렀지만 당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볼만한 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왜목마을 정도? 그런데 당일치기도 아니고 1박 2일이라니? 볼거리도 여의치 않은 것 같은데다 사람도 많지 않은 곳인데 호텔이나 제대로 있으려나? 그래서 서산을 따로 요청했고, 그 동안 인연이 닿지 않아 코앞까지 갔다가도 들르지 못한 간월도를 넣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막상 가보니 당진은 당일치기 정도로는 충분한 볼거리가 있었다. 먼저 들른 Piora 카페의 청보리밭도 상당히 좋았고, Ami Art Museum(아미미술관)은 대박이었다! 그외에 솔뫼성지도 나름 좋았고, 이튿날 들른 인근 태안의 청산수목원과 서산..

충청도 2022.05.23

22.05. 당진 Piora 청보리밭

주소 : 충남 당진시 합덕읍 합덕대로 502-24 / 합덕읍 석우리 48-35 (우)31816영업 시간 : 10:30~20:00기타 : 노키즈존, 베이커리 & 카페, 청보리밭이 유명 Piora 카페 실내는 8세 이하 아이들이 출입할 수 없는 노키즈존이기 때문에 아이들을 동반한 이들은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빵을 먹는다. 사진 왼쪽의 숲 앞쪽 나무는 벚나무이므로 4월초쯤 이곳에 들르면 보리밭 대신 벚꽃이 장관일 것이다. 우리가 들른 5월 7일에 벚나무 아래를 걸어 청보리밭을 한바퀴 돌았는데 꽃이 없어도 무성한 벚나무가 아름다웠다.   사진 원경 오른쪽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최고의 포토존이다. 소나무와 벚나무 비슷한 활엽수가 각각 한 그루씩 있는데 벚나무 비슷한 나무 아래에서 보리밭을 배경으로 촬영하면..

충청도 2022.05.23

22.05. 당진 Piora 카페, 미당면옥

주소 : 충남 당진시 합덕읍 합덕대로 502-24 / 합덕읍 석우리 48-35 (우)31816영업 시간 : 10:30~20:00기타 : 노키즈존, 베이커리 & 카페, 청보리밭이 유명 주차장은 입구 좌, 우에 있는데 작지는 않지만 차가 없으면 갈 수 없는 곳이라 다소 붐볐다.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곳이었고, 딸에게 이끌려(!) 현지에 도착할 때까지 그냥 분위기 좋은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카페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도착해서 보니 넓직하고 조용한데다 카페 앞에 넓게 펼쳐진 청보리밭 때문에 마음에 들었다. 왼쪽 붉은 벽돌 건물은 Piora 카페 본채이고, 오른쪽 앞의 건물은 미당면옥이다. 두 건물이 간이철교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같은 분이 운영하는 듯하다. Piora 카페 별채는 본채 옆에 있어서..

충청도 2022.05.22

21.11. 현충사 은행나무길 국화 전시회, 곡교천의 갈대-억새밭

소통마당은 내가 은행나무길 안내도를 보고 추측한 것이라 명칭이 확실하지는 않다. 스케일이 큰 은행나무 단풍들을 보다가 점점히 박힌 원색 같은 국화 전시장을 보고 별 기대 없이 들렀다. 그랬더니 의외로 전시회 규모가 크고 내용도 좋았다. ASAN, 한반도 지도, 터널, 하트 등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주제를 국화 화분만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몄다. 테마가 있는 국화 앞에서 동행한 동생네랑 재미있는 포즈로 사진을 찍고 즐기다가 곡교천을 건너 억새, 갈대밭까지 구경했다. 은행나무길 규모가 커서 치었지만 억새, 갈대밭도 규모를 조금더 늘리면 머잖아 좋은 관광 명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같은 관광객 입장에서는 한번에 은행나무 단풍도 보고 갈대밭, 억새밭도 볼 수 있으니 좋을 것 같다. 둑방 위의..

충청도 2021.11.13

21.11. 현충사(곡교천) 은행나무길의 단풍

♣ 길이 : 아산시 염치읍 송곡리(충무교) ~백암리(현충사 사거리) = 1.7km.사진 왼쪽 끝이 충무교, 주황색 선이 사람들이 즐겨 찾는 은행나무길, 오른쪽의 주황색이 끝나는 지점(세월교1교)이 현충사 사거리이다. 현충사 사거리는 제2주차장 바로 앞이고, 그 서쪽 탕정까지 은행나무길이 이어져 있어 실제로는 2.1km이다.♣ 은행나무의 총 그루 수와 수령 : 2016년 기준으로 은행나무는 총365그루이며 수령은 55년생이다.♣ 은행나무길 조성 연혁 : 현재 은행나무길은 현충사 성역화 사업으로 조성한 도로로 박정희대통령 시절에 개통식(1967.4.28)을 하였고, 1968년 도로 양쪽에 전나무 326그루를 심었으며, 이후 1973. 3월 당시 아산군의 도로주변 경관계획에 따라 은행나무로 대체하였고, 그 은..

충청도 2021.11.13

21.09. 공세리 마을 풍경과 삼도해운판관비

≪아산 공세곶 고지(貢稅串庫址)≫조선시대 백성들이 조세로 낸 곡식을 저장하였던 조창(漕倉)인 공진창(貢進倉)이 있었던 자리이다. 공세곶창(貢稅串倉)은 공진창의 처음 이름이다. 이곳에서 충청도 각지에서 세금으로 걷은 곡식을 모아두었다가 일정한 시기에 서울로 옮겼다. 초기에는 창고 없이 해안 포구에 곡식을 쌓아두었으나, 1523년(중종 18)에 80칸의 창고를 마련하고 이름을 공진창(貢進倉)이라 하였다. 공진창에는 곡식을 운송하기 위하여 적재량이 800석인 배 15척과 운반인 720명이 배치되었고, 곡식의 수납과 운송 책임자로 해운판관(運判官碑)이 임명되었다. 조선 후기에 접어들어 조창의 기능이 약화되면서 충청도 도사가 해운판관을 겸임하였고 1762년(영조 38) 이후에는 아산 현감이 공진창을 관리하였다. ..

충청도 2021.11.13

21.09. 아산 공세리 성당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길(The Way of the Cross)’은 ‘슬픔의 길(Via Dolorosa)’ 혹은 ‘고난의 길’로 불리기도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본디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은 법정에서부터 십자가를 매고가 못 박혀 죽은 골고다 언덕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이 길에는 각각의 의미를 지닌 14개의 지점이 있다. 다른 성당이나 천주교 유적지 등에서도 십자가의 길은 몇 번 보았는데 공세리 성당이 가장 사실적이어서 이해하기가 쉬웠다. 이전엔 반 추상적인 조소상을 보고 그저 그러려니 생각했지만 이스라엘, 요르단 여행 때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의 길을 직접 본 후로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이스라엘 여행지는 고대 문명과 관련 유적과 기독교 관련 유적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고대 문명 관련 유적..

충청도 2021.11.12

21.09. 아산 공세리 성당

현충사에 들렀다가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공세리 성당에 들렀다. 오래 전부터 공세리 성당이 역사적으로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궁금했었다. 막 해가 저물기 시작한 시각에 도착했는데 코로나 19로 성당 내부는 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외부만 둘러볼 수 밖에 없었다. 성당측 안내문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서울이나 근교에서 보던 성당에 비해 부지가 확실히 넓었다. 특히 건물 밖을 한 바퀴 둘러 조성한 '십자가의 길'과 彫像들은 지금까지 본 어느 곳보다 규모가 크고 섬세해서 인상적이었다. 건물 외관은 서울의 역사적인 성당이랄 수 있는 중림동 약현성당이나 원효로의 예수성심성당과 느낌이 비슷했다. ≪아산 공세곶창지(貢稅串倉址)와 천주교회> -현지 안내문- 이곳은 조선시대 조세미(租稅米..

충청도 2021.11.12

21.09. 현충사 은행나무길과 cafe '은행나무길'

은행나무길 아래 민가의 잔디밭에 있던 범이이다. 목걸이가 없지만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입성이 깨끗한 것으로 미루어 길냥이는 아닌 듯... 유명한 곳인지 사진의 대문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는 이들이 많았다. 흰 벽에 전시한 화려한 작품(!)인 줄 알고 사진을 올리려다 보니 타로 카드였다, ㅎㅎ... 갓피어 오르는 핑크뮬리 꽃인데 '오키(오케이)' 사인을 보내는 이모티콘처럼 생겼다! 세 번째 사진의 프랑스 귀족여성 사진이 있는 의자에 앉아 사진을 촬영하면 상당히 분위기가 있다! 어떤 곳에서는 '현충사 은행나무길'이라고 하고, 어떤 곳에서는 '곡교천 은행나무길'이라고 하는데 어느 것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둑방 위에 만들어진 이 길로 현충사를 드나들었는데 현재는 중간에 새로난 길을 이용한다고 한다...

충청도 2021.11.11

21.09. 현충사 충무공이순신기념관과 아산 청지기 꽃게장

≪임진왜란과 조선 수군≫ 1592년 4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대륙정복 야욕으로 시작된 임진왜란은 무려 7년을 끌며 조선에 크나큰 피해를 주었다. 전쟁 초기에 조선은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에 밀려 불과 20일 만에 한양이 점령되고 말았다. 임금은 멀리 의주까지 피난을 가고 전 국토의 70%가 일본군의 수중에 들어가는 등 조선은 개국 이래 최대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남해 바다 곳곳에서 일본군을 격파하였다. 조선 수군의 화포와 판옥선은 일본 수군의 조총과 군선을 압도하였다. 여기에 거북선을 만들고 탁월한 전술을 펴나간 이순신의 지도력으로 조선 수군은 전쟁 기간 내내 해상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조선 수군은 서해를 돌아 한양으로 진격하려는 일본군을 막음으로써 곡창지대인 호..

충청도 2021.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