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인천 156

분당 메모리얼파크-박용하, 김현식, 이영훈묘

디카를 업글하느라 2백만원 정도 질렀다. 너무 오랜만의 디카 구입이라 신중에 또 신중... 엄마 일이라면 열일 제치고 도와주는 큰딸과 하루에도 몇 번씩 염치불구하고 날린 쪽지에 자상하게 답변해주신 skkim님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감사! 기념으로 일반인들은 눈길주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하는 '능원묘 답사' 사진 중에서 조금 예쁘거나 관심을 끌만 한 사진 몇 개만 올린다. 예상치 못한 양원군묘 위의 유계원묘에서 만난 토깽이(이 놈의 말끔한 행색으로 보아 분명 집에서 탈출한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끔찍한! 잦은 출산으로 주인이 슬그머니 방출한 놈일 것이다!)와 분당메모리얼 파크의 연예인 묘 관련 사진만 올렸다. 가수 중에 내가 너무 좋아해서 운전할 때 가장 많이 노래를 들었던 김현식과 이문세가 부른 '광화문 연..

경기도, 인천 2012.06.09

강화도 고려산의 진달래

1년 반 정도 강화도쪽으로 걸음을 안 한 것 같은데 그 동안 얼마나 많이 달라졌던지... 김포공항을 넘어서면서부터 강화도까지 한강변 아파트 신축, 한강 르네상스(운하계획)로 눈이 가는 곳마다 온통 공사장이었다. 뒤집고, 파헤치고, 교각을 세우고... 익숙한 강화도 길도 해안도로가 뚫리고 곳곳이 공사 중이어서 이젠 더 이상 익숙한 곳이 아니었다. 옛날 생각하고 백련사 쪽으로 느긋하게 올라가면서 중턱의 피나물 밭과 복수초를 찍으려던 계획은 무산되고 일행이 가장 험하고 긴 코스를 잡은 통에 땀 찔찔 흘리며 등산을 해야했다. 게다가 한풀 숙였다지만 아직도 기승을 부리는 뿌연 황사 때문에 풍경은 누리끼리... 그래도 고려산 진달래는 아름다웠다. 고려산행 끝내고 석모도로 건너가는 곳 중의 하나인 선수선착장으로 밴댕..

경기도, 인천 2012.06.08

자장면 발생지 공화춘 사진(2008년 5월 5일 촬영)

2008년 5월 5일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 갔다가 찍은 짜장면박물관으로 새단장하기 전의 공화춘 사진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몇 년째 휘장을 치고 공사 중이라 건물을 볼 수 없었다. 공화춘은 우리나라 자장면의 발생지이다. 인천시에서 공화춘을 구입해서 자장면박물관으로 개조 중이라고 들었는데 사진을 찍을 당시, 중국인으로부터 공화춘을 사들인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인 듯 하다. 저녁인데다 오랫동안 방치되어서 폐가처럼 음산했다. 좁은 골목이라 거리 확보가 안되어서 전경 사진 찍기가 어려웠다. 대창반점 왼쪽 윗집이 최근에 인천 차이나타운이 조성되기 전에 남아있던 3채 가량의 집 중의 하나이다. 70년대 중반에 풍경화를 그리러 자유공원에 자주 나갔었는데 중국인 할머니가 소유했던 가장 보존상태가 좋은 집은 현재 '本土..

경기도, 인천 2012.06.08

수원화성 성밖 답사2

중국풍... 치성의 발전된 형태인 砲樓는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든 시설. 舖樓는 성곽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로 일종의 초소, 혹은 군사대기소. 空心墩은 성곽 주위와 비상시에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망루로 화성에서만 볼 수 있는 시설. 화성의 4대문 중 서쪽 대문으로 원형 그대로 남아있어 보물 제403호로 지정되었으며, 옹성 안 홍예문 좌쪽 석벽에 성문 공사를 맡은 사람과 책임자를 기록한 공사실명판이 있다. 角樓는 성곽의 높은 위치에 세워 주변을 감시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곳, 비상시에는 각 방면의 군사지휘소 역할을 한다. 舖樓는 성곽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로 일종의 초소, 혹은 군사대기소. 暗門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사람..

경기도, 인천 2012.06.07

수원화성 성밖 답사1

성 안에서 시설물들을 보는 것보다 성 밖에서 보면 훨씬 웅장하고 견고해 보인다. 특히 '치'의 경우 정방형으로 툭 튀어나간 평면으로만 보였는데 밖에서 보니 과연 적에게 공격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적이 넘볼 수 없는 견고한 구조라는 걸 느꼈다. 烽墩은 화성의 성곽과 맞물려 벽돌로 지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시설물로 사방을 경계하고 정찰임무를 하기 위한 곳이며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내는 곳이다. 雉는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을 공격하기 위해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도록 한 시설물. 위에서 4번째의 동1치 사진을 보면 모서리가 각이 져있는데 2치는 둥그렇게 굴렸다. 치성의 발전된 형태인 砲樓는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든 시설. 舖..

경기도, 인천 2012.06.07

수원화성 성안 답사3

舖樓는 성곽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로 일종의 초소, 혹은 군사대기소. 暗門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사람, 가축의 통행이나 군수품 조달을 위해 만든 비밀 출입구. 將臺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주둔한 장용외영의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로 서장대와 동장대가 있다. 空心墩은 성곽 주위와 비상시에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망루로 화성에서만 볼 수 있는 시설. 弩臺는 성 가운데에서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해 높이 지은 시설물. 화성의 동쪽 대문. 옹성(甕城)은 성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에 만든 시설로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것 같은 형태라 붙은 이름. 舖樓는 성곽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로 일종의 초소, 혹은 군사대기소. 雉는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을 ..

경기도, 인천 2012.06.07

수원화성 성안 답사2

사진 양을 줄여보려 노력은 하는데, 수원화성은 방어를 위한 시설들이 워낙 많다. 몇 발짝만 진행하면 ..각, 루, 돈, 포, 대와 문 4개, 그리고 암문까지 나온다. 수원화성 답사는 남문인 팔달문에서 시작해서 남포루→ 서쪽→ 북쪽→ 동쪽→ 남쪽 순서로 돈 것이다. 이 글의 사진들은 서북쪽에서 동북쪽 방향으로 진행 중... ♣ 사진의 설명은 시설물 앞의 안내문을 요약한 것. 수원화성의 4대문 중 서쪽 대문으로 원형 그대로라서 보물 제403호로 지정되었다. 편액은 초대 화성유수였던 채제공의 필체이며 홍예문 왼쪽 석벽에 성문 공사를 맡은 사람과 책임자를 기록한 공사실명판이 있다. 空心墩은 성곽 주위와 비상시에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망루로 화성에서만 볼 수 있는 시설. 舖樓는 성곽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 위에..

경기도, 인천 2012.06.07

수원화성 성안 답사1

답사는 팔달문(화성 남대문) 관광안내소에서 시작해서 남포루→ 서남암문→ 서남각루(화양루)→ 서삼치→ 서포루→ 효원의종각→ 서암문→ 서장대(화성장대)→ 서노대→ 서장대(화성장대)→ 서장대(화성장대)에서 행궁 조망하고→ 서이치→ 서포루→ 서일치→ 서북각루→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順으로 진행했다. 그 많은 ~루, ~각루, ~치, ~대, 장대들... 답사하면서도 이 많은 용어들을 알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는데 사진 정리하다 보니 성(城) 이름에 일관성이 있어서 외우지는 못해도 파악은 가능했다. 정조대왕의 야망을 따라가 보았다. 사진의 설명은 시설물 앞에 세운 안내판을 요약한 것. 수원화성의 남쪽 대문. 포루(舖樓)는 성곽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로 초소 혹은 군사대기소 같은 곳. 暗門은 아군의 통행..

경기도, 인천 2012.06.07

인천, 부천 지역 능원묘답사2

초등학교 바로 위에 있는데 무슨 사연인지 입구부터 묘역까지 철책도 모자라 DMZ처럼 입구를 철망으로 또 둘렀다. 철책이 촘촘해서 밖에서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었다. 겉을 빙빙 돌다 철망이 끝나는 지점의 지지대 위로 올라가 한 손으로 철책을 잡고 나머지 손으로 몇 컷의 사진을 건졌다. 얼핏 도굴을 당했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그 때문인가? 숙의 문씨 묘는 철책 안의 또 다른 철책 안에 갇혀 있다(중앙의 오른쪽 끝). 주변의 묘는 모두 전주 이씨들이다. 문종의 후궁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산한 일생이었을 텐데(하지만 당시로선 83세까지 엄청 장수하셨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기에 이렇게 죽어서까지 갇히고 또 갇힌 것인지... 빈 땅이 많고 개발이 안 된 지역이어서인지 승마 중인 일행을 만났다. 차 안에..

경기도, 인천 2012.06.07

인천, 부천 지역 능원묘답사1-지명의 유래

이번 답사는 가까운 부천, 인천지역이어서 최근 들어 가장 많은 양의 답사를 했다. 먼 곳은 차로 이동하니 반쯤은 드라이브하는 기분이 들고 몸도 가벼운 편인데 가까운 곳은 답사량이 많아서 집에 돌아올 때 쯤에는 몸이 파김치 상태였다. 특이한 점은 답사한 묘와 지명의 관련이 유난히 많다는 점이었고 현재는 묘가 도심 외곽에 있기는 하지만 바로 곁의 불도저나 포크레인, 혹은 이미 파헤쳐진 개발현장들을 볼 때 과연 몇 년이나 더 유택들(정확히는 후손들)이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첫번째 답사지는 성종의 서녀와 그 배필인 부천 작동의 경숙옹주-민자방 묘역, 바로 묘 앞에서 불도저로 땅을 파고 있었다. 사진 가운데의 황토는 우리 일행이 그 공사장의 황토를 밟고 지나면서 남긴 자국이다. 조만간에..

경기도, 인천 2012.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