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77

21.11. 현충사(곡교천) 은행나무길의 단풍

♣ 길이 : 아산시 염치읍 송곡리(충무교) ~백암리(현충사 사거리) = 1.7km. 사진 왼쪽 끝이 충무교이고 주황색 선이 사람들이 즐겨 찾는 은행나무길이며, 오른쪽의 주황색이 끝나는 지점(세월교1교)이 현충사 사거리이다. 현충사 사거리는 제2주차장 바로 앞이고, 그 서쪽 탕정까지 은행나무길이 이어져 있어 실제로는 2.1km이다. ♣ 은행나무의 총 그루 수와 수령 : 2016년 기준으로 은행나무는 총365그루이며 수령은 55년생이다. ♣ 은행나무길 조성 연혁 : 현재 은행나무길은 현충사 성역화 사업으로 조성한 도로로 박정희대통령 시절에 개통식(1967.4.28)을 하였고, 1968년 도로 양쪽에 전나무 326그루를 심었으며, 이후 1973. 3월 당시 아산군의 도로주변 경관계획에 따라 은행나무로 대체하였..

충청도 2021.11.13

21.09. 공세리 마을 풍경과 삼도해운판관비

≪아산 공세곶 고지(貢稅串庫址)≫ 조선시대 백성들이 조세로 낸 곡식을 저장하였던 조창(漕倉)인 공진창(貢進倉)이 있었던 자리이다. 공세곶창(貢稅串倉)은 공진창의 처음 이름이다. 이곳에서 충청도 각지에서 세금으로 걷은 곡식을 모아두었다가 일정한 시기에 서울로 옮겼다. 초기에는 창고 없이 해안 포구에 곡식을 쌓아두었으나, 1523년(중종 18)에 80칸의 창고를 마련하고 이름을 공진창(貢進倉)이라 하였다. 공진창에는 곡식을 운송하기 위하여 적재량이 800석인 배 15척과 운반인 720명이 배치되었고, 곡식의 수납과 운송 책임자로 해운판관(運判官碑)이 임명되었다. 조선 후기에 접어들어 조창의 기능이 약화되면서 충청도 도사가 해운판관을 겸임하였고 1762년(영조 38) 이후에는 아산 현감이 공진창을 관리하였다...

충청도 2021.11.13

21.09. 아산 공세리 성당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길(The Way of the Cross)’은 ‘슬픔의 길(Via Dolorosa)’ 혹은 ‘고난의 길’로 불리기도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본디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은 법정에서부터 십자가를 매고가 못 박혀 죽은 골고다 언덕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이 길에는 각각의 의미를 지닌 14개의 지점이 있다. 다른 성당이나 천주교 유적지 등에서도 십자가의 길은 몇 번 보았는데 공세리 성당이 가장 사실적이어서 이해하기가 쉬웠다. 이전엔 반 추상적인 조소상을 보고 그저 그러려니 생각했지만 이스라엘, 요르단 여행 때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의 길을 직접 본 후로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이스라엘 여행지는 고대 문명과 관련 유적과 기독교 관련 유적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고대 문명 관련 유..

충청도 2021.11.12

21.09. 아산 공세리 성당

현충사에 들렀다가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공세리 성당에 들렀다. 오래 전부터 공세리 성당이 역사적으로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궁금했었다. 막 해가 저물기 시작한 시각에 도착했는데 코로나 19로 성당 내부는 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외부만 둘러볼 수 밖에 없었다. 성당측 안내문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서울이나 근교에서 보던 성당에 비해 부지가 확실히 넓었다. 특히 건물 밖을 한 바퀴 둘러 조성한 '십자가의 길'과 彫像들은 지금까지 본 어느 곳보다 규모가 크고 섬세해서 인상적이었다. 건물 외관은 서울의 역사적인 성당이랄 수 있는 중림동 약현성당이나 원효로의 예수성심성당과 느낌이 비슷했다. ≪아산 공세곶창지(貢稅串倉址)와 천주교회> -현지 안내문- 이곳은 조선시대 조세미(租稅米..

충청도 2021.11.12

21.09. 현충사 은행나무길과 cafe '은행나무길'

은행나무길 아래 민가의 잔디밭에 있던 범이이다. 목걸이가 없지만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입성이 깨끗한 것으로 미루어 길냥이는 아닌 듯... 유명한 곳인지 사진의 대문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는 이들이 많았다. 흰 벽에 전시한 화려한 작품(!)인 줄 알고 사진을 올리려다 보니 타로 카드였다, ㅎㅎ... 갓피어 오르는 핑크뮬리 꽃인데 '오키(오케이)' 사인을 보내는 이모티콘처럼 생겼다! 세 번째 사진의 프랑스 귀족여성 사진이 있는 의자에 앉아 사진을 촬영하면 상당히 분위기가 있다! 어떤 곳에서는 '현충사 은행나무길'이라고 하고, 어떤 곳에서는 '곡교천 은행나무길'이라고 하는데 어느 것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둑방 위에 만들어진 이 길로 현충사를 드나들었는데 현재는 중간에 새로난 길을 이용한다고 한다...

충청도 2021.11.11

21.09. 현충사 충무공이순신기념관과 아산 청지기 꽃게장

≪임진왜란과 조선 수군≫ 1592년 4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대륙정복 야욕으로 시작된 임진왜란은 무려 7년을 끌며 조선에 크나큰 피해를 주었다. 전쟁 초기에 조선은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에 밀려 불과 20일 만에 한양이 점령되고 말았다. 임금은 멀리 의주까지 피난을 가고 전 국토의 70%가 일본군의 수중에 들어가는 등 조선은 개국 이래 최대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남해 바다 곳곳에서 일본군을 격파하였다. 조선 수군의 화포와 판옥선은 일본 수군의 조총과 군선을 압도하였다. 여기에 거북선을 만들고 탁월한 전술을 펴나간 이순신의 지도력으로 조선 수군은 전쟁 기간 내내 해상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조선 수군은 서해를 돌아 한양으로 진격하려는 일본군을 막음으로써 곡창지대인 호..

충청도 2021.11.11

21.09. 아산 현충사

《아산 이충무공 유허》 사적 제155호. 아산 백암리 방화산 기슭은 충무공 이순신장군(1545~1598)이 혼인하여 살던 옛집과 그를 기리는 사당이 있는 곳이다. 충무공은 이곳에서 십년 간 무예를 연마하여 서른 두 살 되던 해(1576년, 선조9년)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충무공이 순국하신지 108년이 지난 1706(숙종32)년. 이곳에 공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사당을 세웠으며, 1707년 숙종이 현충사(顯忠祠)라 사액하였다.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사당이 훼철되었으나, 일제시대인 1932년 동아일보사가 주관하여 온 겨레의 정성으로 다시 세웠다. 1945년 광복 후에는 매년 4월 28일에 온 국민의 뜻으로 탄신 제전을 올려 공을 추모하여 왔다. 1966년부터 1974년까지 공의 위업을 기리고자..

충청도 2021.11.10

15.05. 보은 속리 정이품송

≪보은 속리 정이품송(俗離 正二品松)≫ 지정 : 천연기념물 제103호(1962.12.03. 지정) 소재지 :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상판리 17-3번지 높이 : 16.5m 흉고 둘레 : 5.2m. 이 소나무는 나이가 약 800년 정도인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소나무이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이 나무는 조선 세조(재위 1455~1468)가 속리산에 행차할 때 임금이 타는 가마인 연이 소나무 가지에 걸려 지가지 못하게 될 것을 염려하여 "소나무 가지에 연 걸린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밑가지가 저절로 들려 그 밑을 통과하게 되어 이를 신기하게 여긴 왕이 지금의 장관급에 해당하는 정이품의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이로부터 소나무는 '연걸이 소나무' 또는 '정이품송'으로 불려지게 된 것이라고..

충청도 2020.09.22

16.12. 당진 왜목마을

왜목마을은 독특한 지형의 영향으로 해돋이, 해넘이, 달맞이는 물론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 물결 위로 펼쳐지는 별자리를 모두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왜목 앞바다를 천상의 은하수로 가정하여 해변에 작은 오작교를 만들어 놓고 아래에 직녀와 견우의 뚫린 얼굴에서 연인끼리 사진을 찍도록 조성해 놓았다. 다리 아래 중앙에는 하트 모양의 손 조형물을 만들어 놓았는데 연인들의 사진촬영 명소이다. 서산, 태안의 불상과 유적을 답사하는 것이 주목적이어서 왜목마을은 해넘이, 해돋이가 가능한 곳이라 해서 귀경 길에 저녁도 해결할 겸 즉흥적으로 들른 곳이다. 머문 시간이 길지 않았지만 식당가를 제외한 지역은 비교적 조용한 편이었다. 당시엔 잘 몰랐지만 당진은 평택항 입구(경기도와 근접한 곳)에 있어서 주변에 제부도, 대부도, ..

충청도 2017.06.03

16.12. 태안 마애삼존불

≪태안 마애삼존불(泰安 磨崖三尊佛)≫ 지정별 : 국보 제307호 (2004. 8. 31 지정) 위치 :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 산5 시대 : 백제시대 재료 : 화강암. 백화산 중턱에 있는 높이 394cm, 폭 545cm의 감실 모양의 암벽에 새겨진 백제시대 마애삼존불이다. 중앙에 본존불을 배치하고 좌우에 협시보살을 배치하는 일반적인 삼존불과는 달리 중앙에는 보살, 좌에는 석가여래, 우에는 약사여래불을 배치한 독특한 양식을 취하였다. 또한 좌우의 여래상은 큰 반면에 중앙의 관세음보살은 작아 1보살(菩薩) 2여래(如來)라고 하는 파격적인 배치와 함께 특이한 구도를 보여 주고 있다. 통견의 불의가 두껍고 힘차게 처리되었으며, 앞자락이나 두 팔에 걸쳐 내린 옷자락도 묵직하게 표현되는 등 부처의 위엄을 돋보이게 하..

충청도 2017.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