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184

봄비 내리는 이화여자대학교 캠퍼스

30년쯤 됐을까? 정말 오랜만에 이대 캠퍼스에 들렀다. 이대박물관 안의 국보 107호 백자철화포도무늬항아리와 보물 237호 청자'순화4년'명 항아리, 보물 416호 청자 투각고리문 의자, 보물 644호 백자 청화송죽인물문 항아리, 보물 645호 백자 철화운룡문 항아리와 등록문화재 14호인 이대 본관 파이퍼홀을 보기 위해서였다. 유감스럽게 이대박물관 안의 도자기들은 다른 전시 때문에 수장고에 들어가서 하나도 못 보았다. 4월 20일, 하루 종일 비가 추적추적 내렸지만 파이퍼홀 앞의 분홍 옥매밭과 만개한 벚꽃, 높이 솟은 나무에서 떨어지던 하얀 목련꽃잎은 우중충한 날씨를 잊게 했다. 정문 왼쪽 벽에 새긴 배꽃 벽화는 여자대학교라는 확실한 이미지와 이화여대의 상징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서울특별시 2013.04.22

경희궁 담장길 따라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3

다시 경희궁 서쪽 담장에서 북쪽 담장으로 꺾이는 지점으로 이동→ 북쪽 담장 터를 따라 민가들이 많이 들어선 까닭에 담장 터 외곽(사직터널, 사직단 건너편으로)을 넓게 돌음→ 도정궁 터(사직터널 입구의 GS주유소 뒷 건물)→ 축구회관(경희궁 유구, 무덕문 터)→ 사직단→ 사직단 행차로→ 어의궁 터→ 종침교(송첨교) 터→ 봉상시(이왕직봉상시 / 이왕직아악부) 터→ 훈국 신영, 한성부 터 사진의 건물들 앞으로 북쪽 담장이 지났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지금은 민가들이 들어서 담장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막다른 골목이라 건물 앞으로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기 때문에 사직터널 앞 대로로 나가야 한다. 터널 위 오른쪽의 종로문화체육센터 뒤로 서울성곽 서대문 구간이 지나기 때문에 서대문 쪽에서 답사는 이곳에서 출발하여 인..

서울특별시 2013.04.16

경희궁 담장길 따라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2

송월동 '월암동 바위글씨'에서 바로 위쪽 맞은편의 홍파동 홍난파가옥으로→ 베델 가옥 터→ 구세군 영천교회('성동인우애지산학' 바위글씨와 문성묘 터)→ 딜쿠샤(테일러 가옥)→ 권율장군 집 터→ 다시 경희궁 서북담장으로... 홍파동이나 행촌동은 고지대라 같은 행정동(교남동)이면서 아래에 위치한 송월동, 천연동이 아주 잘 조망된다. 사진 중앙 왼쪽의 푸른 지붕 건물은 천연정 터인 금화초등학교이다. 금화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사진 왼쪽은 감리교신학대학, 경기대학교, 충정로, 서울역으로 이어지고 사진 오른쪽은 금화터널, 서대문독립공원, 한성과학고등학교, 안산 등으로 이어진다. 길 건너 끝에 있는 붉은 벽돌에 삼각 지붕건물이 홍파동 홍난파 가옥이고 길 이쪽은 송월동이다. 길 아래 쪽의 송월동은 재개발 때문에 이미 비었..

서울특별시 2013.04.16

경희궁 담장길 따라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1

2013. 3/17. daum cafe 나홀로 테마여행 주관, 사학자 이순우 안내. 흥화문(경희궁 정문, 서울역사박물관) 터→ 경희궁 숭정전→ 황학정 터→ 서울기상청(송월동)→ '월암동' 바위글씨→ 홍난파 가옥→ 문성묘 터('성동인우애지산학' 바위글씨)→ 베델 가옥 터→ 딜쿠사(테일러 가옥)→ 도정궁(덕흥대원군 사당) 터→ 사직단→ 사직단 행차로→ 경희궁 유구 확인 표석(무덕문 터)→ 어의궁 터→ 종침교→ 봉상시(이왕직봉상소, 이왕직아악부) 터→ 무관학교 터→ 훈국 신영 터(한성부 터) -≪경희궁의 역사≫- 경희궁은 광해군의 이복 형제인 정원군(원종으로 추존)의 집 터(잠저)였는데 광해군이 즉위 9년(1617)에 이곳에 왕기가 있다는 말을 듣고 기를 누르기 위해 궁궐을 짓고 경덕궁이라 불렀다. 영조 36..

서울특별시 2013.04.16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봄 풍경

2013. 4/7. 지인의 결혼식이 서울대학교 연구공원에 있어서 갔다가 후문에서 정문으로 산책 삼아 걸어나오며 촬영했다. 우연히 바로 전날인 4/6에도 같은 장소에 같은 이유로 참석을 했는데 비가 오고 추웠다. 하지만 7일은 바람만 불고 모처럼 쾌청해서 산책하기에 좋은 날이었다. 예년 같으면 답사하느라 산으로 쏘다녀서 매주 단위로 봄 기운을 새롭게 느낄 수 있었는데 올해는 바뀐 직장에 적응하느라 건강이 나빠져서 봄을 느낄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벌써 개나리, 산수유 등은 한창을 넘겼고 벚꽃은 이번 주부터 물이 오르기 시작했다. 슬프다, 나의 봄... 중앙 왼쪽의 거무스름한 건물... 연구공원 주위로 백신연구소를 비롯하여 국내 유수 기업 이름을 걸은 연구동들이 늘어서있다. SK연구동, LG연구..

서울특별시 2013.04.14

경복궁 담장길 따라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3

국립민속박물관 정문(광화문 이전 위치) → 중학천 돌다리(장생전교, 건춘문 앞 다리, 십자각교) → 건춘문(경복궁 동문) → 어구(금천 수문) → 동십자각 → 광화문 육조 앞길 → 목은선생 영당 이곳에 1927년 일제에 의해 이전된 광화문이 1968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때까지 40년 가까이 있었다. 일제가 이곳으로 광화문을 이전한 이유는 이곳과 경회루가 일직선 상에 있었기 때문인데 당시에 경복궁의 전각들이 대부분 헐려 나간 상태에서 경회루와 이곳으로 옮긴 광화문을 일직선으로 배치한 후 양편으로 야외전시물을 늘어놓기 위함이었다. 그 목적에 충실하게 광화문은 1929년 조선박람회 때 출입구로 이용되었다. 1968년에 광화문은 콘크리트로 바뀌어 원래 위치로 돌아갔지만 일제가 광화문을 옮길 당시에 변형한 담..

서울특별시 2013.04.10

경복궁 담장길 따라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2

통의동과 창성동 경계지점의 썩은다리(서금교, 서영교, 석은교) → 진명여학교(창성위궁) 터 → 청와대사랑방 → 경복궁 북문 추성문 → 경무대(융문당과 융무당) 터 → 경복궁 신무문(북문) → 경복궁 북문(신무문) → 경복궁 북문인 광무문과 계무문 → 경복궁 춘생문 터 → 태화궁 터 → 종친부와 규장각 터(국립현대미술관 건립지) ps : 경복궁 북쪽 담의 문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추성문 - 신무문(북쪽 대문) - 계무문 - 광무문 - 춘생문 유니세프 건물 앞에 있는 모자상이다. 사진 중앙 부분이 썩은다리(서금교, 서영교, 석은교)라는 돌다리가 있던 곳이다. '썩은다리'는 하천이 휘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 원래 이름인 서금교, 석영교가 와전된 것으로 추측한다. 현재의 창성동 정부합동청사..

서울특별시 2013.04.09

경복궁 담장길 따라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1

광화문과 해태상→ 서십자각→ 통의동 백송(창의궁 터)→ 영추문→ 대루원 터(매동보통학교 터)→ 적십자사 터→ 석은교(썩은다리)→ 진명여고 터→ 추성문과 신무문→ 경무대(융문당과 융무당)→ 춘생문 터→ 광화문 이전 터(국립민속박물관 정문)→ 중학교 돌다리(장생전교)→ 건춘문→ 종친부 터(규장각)→ 동십자각(십자각교)→ 어구(금천 수문)→ 육조 앞길 -≪경복궁에 대한 개요≫- 경복궁은 조선 건국(1392) 후 한양으로 천도(1394)를 하면서 태조 4년(1395) 9월에 완공한 법궁이다. 경복궁 앞으로 육조관아가 들어섰고, 임진왜란 때 궁궐이 소실되었지만 육조의 기능은 대체로 유지되었으므로 경복궁 주변과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은 정치권력의 핵심적인 공간이었다. 경복궁은 정남향이 아니라 약간 서쪽으로 방향..

서울특별시 2013.04.07

창덕궁, 종묘 담장길 따라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3

창덕궁 북쪽 뒷담길에 이어 성균관대학교를 통과해 성균관(문묘)→ 창경궁 집춘문→ 국립서울과학관을 지나 창경궁 월근문→ 창경궁 흥화문→ 창경궁 선인문→ 순라길→ 인의동 어영청 터(동원예식장 터)→ 종묘 창덕궁 북(담)장을 돌아 성균관대학교 호암관 앞을 지난 뒤 언덕 아래로 내려오면 바로 성균관이 나타난다. 아래 사진은 성균관(문묘)에서 유생들의 교육을 하던 명륜당이고 앞쪽에 제례공간인 대성전이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의 위판과 공자의 제자인 안자, 자사, 그리고 증자, 맹자, 공문(孔門)10철, 송조육현(宋朝六賢), 우리나라의 18명현(최치원, 설총, 안유,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이이, 성혼, 김장생, 송준길, 박세채, 김인후, 조헌, 김집)의 위패를 배향하고 있다. 문묘의 외..

서울특별시 2013.04.02

창덕궁, 종묘 담장길 따라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2

답사코스 대동세무고등학교(이왕직관사 터)에서 다시 창덕궁 쪽으로 내려와... 원서동 고희동가옥→ 원서동 빨래 터→ 신선원전(북일영, 무관학교)→ 원서동 백홍범가옥→ 중앙학교(중앙고등학교)→ 창덕궁 뒷길→ 창덕궁 건무문 춘곡 고희동이 일본에서 유학 후 귀국하여 1918년에 직접 설계해서 지은 목조 한옥으로 41년간 거주했다. 고희동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로 미술교육과 미술 행정, 미술 운동가로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처음에는 안채, 사랑채, 문간채, 곳간채로 구성되었으나 원형이 심하게 훼손된 것을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후 안채와 사랑채를 보수, 복원하였다. 전체적으로 ㅁ자형 배치이며 긴 복도와 유리문, 툇마루와 대청의 실내화, 개량 화장실 등 근대 초기 한국 주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문 밖의 안내..

서울특별시 2013.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