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184

홍난파 가옥과 딜쿠샤(테일러 가옥)

가을 바람 좀 쐬러 지난 9월 25일에 직장 동료들과 홍난파 가옥에서부터 윤동주시인의 언덕까지 다녀왔다. 글을 쓰면서 지도를 첨부하려다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지도로 보니 사직터널을 사이에 두고 홍난파 가옥과 딜쿠샤가 양쪽에 있었다. 딜쿠샤가 있는 언덕 아래로 사직터널이 지나는 것이다. 딜쿠샤 조금 동쪽 옆에는 서울성곽 서대문 구간 입구가 있다. 성곽 입구의 옥경이슈퍼는 몇년 전의 태풍으로 간판이 날아갔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편의점으로 바뀌어 있었다. 서울성곽 서대문 구간 진입로에서 인왕산으로 오르는 길은 코스모스가 한창이었다. 청명한 하늘 아래 인왕산과 북악산, 북한산을 마주하고 인왕산 길을 걸으며 모처럼 가을을 실컷 느꼈다. 홍난파 가옥 내부는 3년 만에 다시 보았다. 개방 시간이 잘 맞지 않아서였는..

서울특별시 2013.10.10

구)서울시청(서울도서관)과 주변의 문화유적들

'의사'와 '열사'에 대한 국가보훈처의 견해 : '열사'는 맨몸으로써 저항하여 자신의 지조를 나타낸 사람, 또는 직접 행동은 안 했어도 죽음으로 정신적인 저항의 위대성을 보인 분. '의사'는 무력으로써 항거하여 의롭게 죽은 사람, 또는 주로 무력으로 행동을 통해서 큰 공적을 세운 분. 국가보훈처의 기준에 의하면 나석주 선생은 '의사'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동상이 위치한 부근에 있었던 일제 경제침략의 본거지인 조선 식산은행과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던지고 권총으로 일경 7명을 사살했다. 그런데 동상 아래에는 '나석주열사의 상'으로, 안내문에는 '나석주의사 의거 기념 터'로 쓰여있다. 나석주 의사(1892~1926)는 황해도 재령 출신으로 3.1운동과 독립군 군자금 모금에 가담한 뒤 중국에 망명했다. 임시정부..

서울특별시 2013.08.05

명동성당과 남대문시장 주변, 숭례문

2013. 05.11의 답사 코스는 명동성당(이재명 의거 터)- 나석주 열사 동상- 남대문로 한국전력 사옥- 구)미국문화원- 구)서울시청(서울도서관)- 원구단- 한국은행 본관- 구)제일은행 본점- 숭례문- 약현성당- 손기정기념관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롯데호텔 쪽에서 들어갔기 때문에 명동성당을 못찾아 한참 헤맸다. 일본 관광객들과 중국 관광객들로 명동은 북새통... 명동에서 헤매는데 길가에 진고개(泥峴)이란 표석이 보였다. 예전에는 이곳이 남산골의 고개였고 비만 오면 진흙에 발이 빠져 진고개라고 불렸다 한다. 조선시대에 명동은 성안이기는 해도 외곽에 지나지 않았는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인들에 의해 번화가가 되었다. 얼핏 현재의 명동성당 자리는 초창기 천주교도였던 김범우의 집터였다는 내용이 생각났다...

서울특별시 2013.07.28

효창공원, 산천동 부군당

효창공원(사적 330호). 효창공원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바친 애국지사들의 유해를 모신 곳이다. 원래는 정조와 의빈 성씨 사이에서 정조의 큰 아들로 태어나 5세에 죽은 문효세자의 무덤인 효창원(孝昌園)이 있었던 곳이다. 몇년 전에 인기를 끈 TV드라마 의 여주인공을 기억하면 의빈 성씨에 대한 이해가 빠를 것이다. ♣ 이산(정조)역 : 이서진, 성송연(의빈 성씨)역 : 한지민. 영조역 : 이순재 분. 효창원 조성 후 경내에 문효세자의 생모인 의빈 성씨, 순조의 후궁인 숙의 박씨, 숙의 박씨의 소생 영온옹주가 안장되었다. 일제는 1924년 6월에 효창원의 일부를 효창공원으로 만들고, 1945년 3월에 효창원 안의 모든 무덤을 고양의 서삼릉으로 옮겼다. 1946년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선생이 조국 광복을 ..

서울특별시 2013.07.28

합정동, 망원정 터

망원정 터를 가려면 합정역 8번 출구로 나가야 한다. 우리는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과 절두산 성지를 먼저 들렀기 때문에 7번 출구에서 만났다. 이 분수 뒤 오른쪽 샛길로 가면 5분 이내에 외국인 선교사 묘원이 있다. 옆에 외국인 선교사 묘원과 절두산 성지가 있어서인지 벽화의 내용이 종교화이다. 이 고층빌딩 때문에 합정역에 가면 공덕역 느낌도 좀 나고, 낯설기도 하다. 대학 시절 영등포역에서 버스를 타고 양화대교를 건너자면 당인리발전소의 굴뚝과 잠두봉 외에는 이렇다 할 건물이 없었는데... 카메라를 들면 북서쪽 방향 어디서나 이 건물이 배경처럼 버티고 있다. 지정 번호 :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9호 / 시대 : 1424년(세종 6). 소재지 :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457-1번지. 망원정은 임금이 매..

서울특별시 2013.07.28

구)용산신학교와 원효로 예수성심성당, 연복사탑중창비

2013년 5월 4일, 카페 에서 주관한 마포, 용산지역 답사의 한 코스로 용산신학교와 원효로 예수성심성당을 찾았다. 이날의 코스는 합정동에 있는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과 절두산성지에서부터 망원정 터, 효창공원, 산천동 부군당, 성심여중고 안의 구)용산신학교와 원효로 예수성심성당, 용산 수위관측소, 한강철교, 천주교 순교성지 새남터기념관, 철도회관의 연복사탑 중창비까지 돌아보는 답사였다. 정말 많은 곳을 답사했고, 지금 생각해도 진저리가 처질 정도로 많이 걸었다. 공교롭게 5월 4일의 답사는 천주교 순교성지가 많았고, 답사 코스가 워낙 길어서 엄청나게 고생을 했다. 하지만 사진과 글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근대 한국천주교의 수난사를 확실히 알 수 있어서 그날의 답사가 고맙기 그지없다. 소재지 : 서울특별시 ..

서울특별시 2013.07.14

중림동 약현성당과 서소문 순교성지

-성당 안내문-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구 중림동 149번지 2호 지정번호 : 사적 252호 / 시대 : 1892년(고종 29) 중림동 약현성당은 우리나라에 세워진 최초의 벽돌조 서양식 교회 건축물이다. 약현(藥峴)은 이곳에 약초 재배지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성당은 수많은 순교자의 처형지였던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지'를 염두에 두고 설립되었다. 이들 중 聖 정하상 바오로와 聖 남종삼 요한을 비롯한 44명의 순교자가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 때 시성(諡聖)되었고, 2009년 현재 25명의 순교자가 시복청원 중이다. 이 성당은 1887년 현재의 순화동에서 공소(사제가 없는 지역신자들의 모임)로 시작하였다. 그 뒤 조선교구 제 8대 민 주교(뮈텔)는 1891년 이곳 대지를 매입하고 ..

서울특별시 2013.07.13

천주교 순교성지 새남터기념관

위치 : 용산구 이촌동 199-1번지. 1호선 용산역과 한강철교 사이에 있는 뽀족한 종탑의 3층 기와 건물. ≪새남터의 유래 및 역사≫ 새남터는 조선 시대 도성 밖 남쪽 한강변에 있던 노들(한자어 음역 사남기(沙南基)을 말하며 노량진과 배로 왕래하던 나루터였다. '새남터'의 뜻은 '새나무 터'의 준말로 '새나무'는 풀과 나무를, '새'는 억새를 뜻한다. 이곳은 숲이 울창해서 조선 초기에 군사들의 훈련장으로 사용되었고, 국가에 중죄를 지은 국사범의 처형장으로도 사용되었다. 1456년(세조 2)에 단종의 복위를 꾀한 사육신들도 이곳에서 처형되었다. 새남터가 순교자들의 피로 물들기 시작한 것은 1801년부터 1866년까지이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처형된 것을 시작으로 1839년의 기해..

서울특별시 2013.07.09

절두산 천주교 순교성지

"천주교인들 때문에 오랑캐들이 여기까지 왔다. 그들 때문에 우리의 강물이 서양의 배로 더렵혀졌다. 그들의 피로 이 더러움을 씻어내야 한다" 천주교는 우리나라에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학문으로서 처음 소개된 이후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온 뒤부터 본격적으로 전파되었다. 천주교는1785년부터 조선에서 박해를 받기 시작했는데 주로 평등사상, 조상숭배와 유일신 신봉에서 따른 문화적 충돌 때문이었다. 순조 시기인 1801년의 신유박해 때 전국에서 300여명이, 1839년 기해박해 때 130여명이 처형당했는데 이 시기에는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정적을 제거하거나 자신들의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천주교도와 정치를 묶어 박해한 경향이 많았다. 흥선대원군이 집권할 즈음에는 교세도 나름 확장되고, 남하를 시..

서울특별시 2013.06.30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과 양화진, 잠두봉 유적

지하철2호선 합정역 7번 출구 → 당산역 방향으로 지하철 아래의 도로를 따라 5분 정도 걸어감. 묘지의 총면적은 14,000㎡(4,000평) 정도이다. 그 중 개신교 선교사 묘지가 120여기(가족 포함)로 가장 많고, 미군 묘지가 60여기, 한국인 묘지도 23기가 있다. 선교사나 군인이 아닌 경우는 60여기, 직종이 확인되지 않은 경우는 70여기이다. 국적별로는 14개국(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러시아, 남아공화국, 필리핀, 일본, 한국)의 묘지가 있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의 유래는 1884년 갑신정변 때 개화파에 의해 죽을 뻔한 민영익을 살린 알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알렌(H.N.Allen)은 그 공로로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을 설립했고..

서울특별시 2013.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