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인천 156

포천 비둘기낭 폭포

천연기념물 제537호.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대회산리 415-2번지 등. 지금으로부터 약 50만년 전~13만년 전 사이(신생대 4기), 휴전선 북쪽 강원도 평강 부근(해발 453m인 '오리산'과 '680m 고지')에서 화산활동이 일어났다. 잘 흘러내리는 현무암질 용암은 주로 '680m 고지'에서 흘러나와 서울-원산을 잇는 낮은 지대(추가령 구조대의 옛 한탄강 줄기)를 따라 흘러내려 평강-철원-포천-연천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용암대지 평원을 만들었다. 한탄강을 따라 오늘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깊고 아름다운 경관의 현무암 협곡은, 이 용암대지를 흐르고 있는 현재의 한탄강을 비롯하여 주변 하천들의 오랜 침식작용으로 이루어졌다. '한탄강 현무암 협곡과 비둘기낭 폭포'는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대회산리(야미리)..

경기도, 인천 2015.07.28

세종대왕 시대의 과학발명품들

사진은 세종대왕과 그의 비 소헌왕후의 합장릉인 영릉(英陵) 입구 세종전 앞에 전시된 것들이다. 조선시대에는 과학이나 기술은 경시되었으며 과학자들도 장인이라 하여 사회, 경제적으로 천시되었다. 그러나 세종대왕은 과학기술을 국가의 중요한 발판이라 여겨 선진 과학기술을 받아들이고 발전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다.기술 습득을 위해 인재를 선발하여 중국에 유학을 보내고 이들에게 공동연구를 하도록 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장영실, 정초, 정인지, 이천 등 우수한 과학자들의 활동으로 훌륭한 성과를 이룩할 수 있었다.  천문대에 설치한 중요한 천문관측기의 일종으로 적도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만들었다. 오늘날의 각도기와 비슷한 구조이며 혼천의를 간소화한 것이다. 대간의는 경회루 북쪽의 간의대..

경기도, 인천 2015.07.06

여주 영녕릉(英寧陵)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 소재. 세계문화유산. 사적 제195호. 영릉(英陵)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를 합장한 능이다. 세종대왕은 조선 제4대 왕으로 1418년 왕위에 올라 1450년 승하하니 재위 32년에 54세였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한글(훈민정음:1997년 세계기록유산 등재)을 창제하고 측우기, 혼천의, 해시계 등 과학기구를 발명 제작하였다. 아악을 정립하고, 북방의 야인을 정벌하고 4군과 6진을 개설하여 우리나라의 국경선을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확정하였으며, 일본 대마도(쓰시마)를 정벌하여 국방을 튼튼히 하였다. 학문을 숭상하여 학자를 기르고 활자를 개량하여 월인천강지곡(부처의 공덕을 칭송한 노래), 용비어천가(조선의 창업을 찬양한 노래), 농사직설(농업기술을 모은 책), ..

경기도, 인천 2015.06.21

화성 궐리사와 오산의 고인돌 유적

화성 궐리사(실제로는 오산시에 소재)는 매년 유림과 후손들이 봄, 가을 공자의 탄신일과 기일을 기하여 석전의 예를 올리는 서원적 사당이다. (PS : 석전 - 문묘에서 공자를 비롯한 4성 10철 72현의 제사를 지내는 의식) 궐리사는 원래 공자의 64대손인 공서린이 은행나무를 심고 서재를 세워 후학을 양성했던 곳이다. 은행나무에 북을 달아 두드리며 제자들의 학문을 독려했는데 그가 죽자 은행나무도 말라죽었다고 한다. 공서린선생은 조선 중종 때 문신으로 대사간을 역임하고 좌승지로 부임할 당시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15년간 옥고를 치렀다. 석방 후 경기황해 양도 감사와 대사헌을 역임하고 청백리로 선정되는 등 성품이 곧고 기개가 높으며 문장이 뛰어났다. 궐리사 안의 은행나무 옆에는 2010년에 세운 선생의 유허비..

경기도, 인천 2015.05.02

궁평항 방파제와 피싱 피어(fishing pier)

≪궁평항≫궁평항은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궁평리에 있는 어항이다. 옛날부터 한양과 가깝고 해안과 갯벌 등 자연환경이 좋아 궁에서 관리하던 땅이 많아 '궁평항'으로 불렸다. 2004년 '어촌정주어항'으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12월 '국가어항'으로 승격되었다. '궁평 낙조'는 화성8경의 하나로 궁평항 방파제 중간에 있는 정자를 끼고 포구 사이로 지는 낙조가 아름다워 사진사들이 즐겨찾는 출사지이기도 하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바다 건너 충남 당진시 석문면의 당진화력발전소 뒤로 지는 낙조도 아름답다. 날이 좋으면 국화도, 입파도, 풍도, 도리도 등의 인근 섬과 서해대교까지 전망이 가능하다. 궁평항은 200여척의 어선이 정박 가능한 선착장이 있고 항구를 둥글게 감싸는 형태로 1.5km의 방파제가 양쪽으로 길게 뻗..

경기도, 인천 2015.04.14

화성시 남양향교

≪남양향교≫ 경기 문화재자료 34호.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남양향교는 조선 태조 6년(1397)에 음덕리면 역곡동에 처음 세웠다고 하며, 고종 10년(1873)에 현 위치(남양동 335번지)로 옮겨 세웠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도 이 때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건물 배치는 전학후묘의 형태로 앞쪽에 교육공간인 명륜당과 동재, 서재가 있고, 뒤쪽에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외에 주 출입문인 외삼문, 대성전 출입문인 내삼문과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수복실이 있다. 옮겨 지을 당시에는 모든 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대성전 앞의 동무, 서무와 명륜당이 없어졌다가 후에 명륜당만 새로 지었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5성과 ..

경기도, 인천 2015.04.12

남양 성모성지

≪남양 성모성지≫ 소재지 : 경기도 화성시 남양동. 화성시 남양동에 위치한 남양 성모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때 무명의 천주교인들이 순교한 곳이며, 성모의 품처럼 아늑한 경관을 지닌 곳이다. 이곳은 1991년 10월 7일에 성모께 봉헌되었고 한국교회 사상 처음으로 '성모 마리아 순례성지'로 선포되었다. 남양 순교성지가 '성모 성지' 라는 테마를 갖게 된 것은 성모 마리아가 '순교자들의 어머니'로 상징되기 때문이다. 박해 당시 순교자들은 고통을 이기기 위해 묵주기도를 올리며 성모 마리아에게 의지했다고 한다. 1868년 병인박해 당시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에서 순교했는데 기록에 전해지는 사람은 충청도 내포사람 김필립보와 박마리아 부부, 수원 갈매리 사람 김홍서 토마, 용인 것옥골 사람 정필립보 등 4명..

경기도, 인천 2015.04.12

화성 공룡알 화석산출지

천연기념물 제414호.소재지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고정리 산5지정 면적 : 15.90㎢지정일 : 2000.3.21.화성시 송산면 공룡알 화석지는 1999년 시화방조제에 의해 드러난 광활한 남쪽 간척지에, 섬으로 존재하는 중생대 백악기 지층에서 공룡알이 발견됨으로써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현재까지 지표조사를 통해 시화호 남쪽 약 10㎢의 간척지에서 180여개 이상의 공룡알 화석과 29개 이상의 둥지가 발견되었다. 공룡알들은 주로 시화호방조제가 완공되기 전에 해수가 유입되던 조간대에 위치한 작은 섬들(한염, 하한염, 중한염, 상한염, 개미섬, 닭섬)과 그 주변에서 발견된다. 공룡알들은 갯벌로 덮이지 않은 시화호 바닥 지층에서도 발견되고 있어 공룡알의 분포지역은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넓으며 갯벌층을 ..

경기도, 인천 2015.04.11

오산 독산성

≪오산 독산성(禿山城)≫ 사적 제140호. 소재지 : 경기도 오산시 지곶동 162-1. 독성산성이라고도 하는 이 산성은 평지에서 돌출하여 사방을 두루 살필 수 있어서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며, 조선시대에는 남한산성, 용인의 석성산성 등과 함께 도성 방어를 위한 삼각체계를 형성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이 성은 백제가 처음 쌓았고,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쳐 임진왜란 때까지 계속 이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선조 27년 9월 11일부터 14일까지 불과 4일 만에 백성이 합심하여 성벽을 새로 쌓았다고 한다. 그 후 임진왜란이 끝나고 이 성의 중요성이 강조되자 1602년(선조 35) 변웅성이 보수하고, 1796년(정조 20) 수원성의 축조와 함께 개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성의 둘레는 1,095m이다. 이..

경기도, 인천 2015.04.07

화성시 융건릉

≪융건릉≫ 사적 제206호.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융릉(隆陵)은 사도세자(추존 장조)와 비 혜경궁 홍씨(추존 헌경왕후)를 모신 능이다. 건릉(建陵)은 조선 22대 왕인 정조와 그의 비 효의왕후 김씨를 모신 능이다. 정조가 양주(현재의 휘경동)에 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영우원)를 이곳으로 옮기고 현륭원이라 하였으나 고종 때 황제로 추존하면서 융릉으로 바꾸었다. 정조가 아버지 곁에 묻히기를 원하여 부자를 한 구역에 모시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억울하게 죽어간 아버지의 넋을 위로하고자 했던 정조의 효성으로 빚어진 화려한 아름다운 왕릉을 만날 수 있고, 새로운 조선을 꿈꿨던 개혁군주의 왕릉도 만날 수 있다. 주변에는 융릉의 원찰인 용주사가 있다. 사진 상의 왼쪽은 정조와 효의왕후 합장릉인 건릉, 오른쪽은 추존..

경기도, 인천 2015.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