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인천 156

안성 죽산리 삼층석탑, 죽산리 석불입상

소재지 :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240-2.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8호.탑이 위치한 이곳은 고려시대 큰 절인 봉업사가 있던 곳으로 통일신라시대 탑 위에 고려시대 혜소국사가 다시 세운 것으로 전해 온다. 탑 기단부의 일부가 땅에 묻혀 탑의 완전한 모습을 알 수 없었으나 2005년 발굴조사 결과 단층 기단의 구조가 아니고 2층 기단의 구조임이 밝혀졌고 기초 지층부위에서 발견된 태화(太和)명 기와를 통해 9세기 전반에 탑이 건립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탑 높이는 3.2m이다.기단의 각 면과 탑신의 각 몸돌에 모서리 기둥(우주 : 隅柱)이 조각되어 있으며 기단 윗돌(갑석 : 甲石)에 연꽃을 엎어놓은 무늬(복련 : 覆蓮)가 장식되어 있다. 두꺼운 지붕돌(옥개석 : 屋蓋石), 4단의 옥개석 받침 등의 조형양식을 볼..

경기도, 인천 2017.06.06

안성 죽산리 봉업사지 당간지주와 오층석탑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145-2, 죽산리 145외 41필지 소재. 봉업사지는 죽산면 죽산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이다. 봉업사(奉業寺)는 양주 회암사, 여주 고달사와 더불어 고려시대 경기도 3대 사찰로 꼽히는 거대 사찰이었다. 에 따르면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남쪽으로 갔다가 1363년(공민왕 12) 청주를 거쳐 올라올 때 이 절에 들러 태조의 어진을 인사하였다고 한다. 이를 통해 봉업사가 고려시대 태조 왕건의 어진을 봉안한 진전사원(眞殿寺院)이었음을 알 수 있다. 봉업사지는 오랫동안 죽산리사지로 알려져 오다가 1966년 경지정리 작업 시 출토된 유물의 명문을 통해 봉업사로 밝혀졌다. 이후 경기도박물관의 3차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통일신라시대의 '화차사(華次寺)'가 고려시대의 봉업사로 변환되었으며,..

경기도, 인천 2017.06.06

안성 선유동 마애사존불상

향토유적 제13호소재지 :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신흥리 산 59-1.이 마애불은 선유동 마을 뒤편의 선유암 정상부에 있다. 이곳은 죽산에서 이천의 설성과 모가로 통하는 길목이었다. 선유암 정상의 우뚝 솟은 바위의 동서편에 모두 4구의 불상이 선각(線刻)되어 있다. 동편에 1구가  있고, 서편에 3구가 있는데 그 중 2구는 남쪽을 바라보고 있고 나머지 1구는 서쪽을 향하고 있다.전체적으로 마멸이 심하지만 각 불상의 법의가 양팔에서 길게 늘어져 끝이 삼각형을 이루고 가슴에서 무릎부분까지 간격이 넓고 수평에 가까운 U자형을 그리며 두 다리에는 수직으로 옷주름을 표현하였다. 한편, 서편의 마애불상 중 남쪽에 위치한 불상에서 바위를 따라 남동쪽으로 5m 가량 오면 암반면을 채석하여 편평하게 다듬은 곳이 있다. 이..

경기도, 인천 2017.06.05

안성 매산리 석불입상

≪매산리 석불입상(梅山里 石佛立像)≫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7호. 소재지 :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매산리 365-3번지. 미륵당이라 부르는 높은 누각 안에 모셔진 높이 5.6m의 미륵불상이다. 석가모니 다음으로 부처가 될 미륵은 보살과 부처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어 모습도 보살상과 불상 두 가지로 제작되는데 이 입상은 보살상이다. 이 미륵불은 높은 머리 위에 사각형의 보개(寶蓋)를 쓰고 있다. 높은 보개는 고려 초기 보살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으로 이를 통해서 이 불상이 고려 초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목구비는 비례가 맞지 않아 괴이한 느낌을 준다. 두 귀는 볼에 밀착되어 길게 늘어져 어깨에 닿아 있고, 굵은 목에는 번뇌, 업, 고난을 상징하는 삼도(三道)가 표현되어 있다. 옷(法衣)은 ..

경기도, 인천 2017.06.04

용인 심곡서원

사적 제530호.소재지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 203-2번지. 심곡서원은 중종 때의 문신인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1482~1519)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서원이다. 조광조 선생의 묘소가 이곳에 있기 때문에 일찍부터 서원을 세우기 위한 논의가 있었으나 효종 원년(1650)에 서원이 건립되어 그 해에 심곡서원이라는 사액(賜額 : 임금이 사당이나 서원 등에 이름을 지어 그것을 새긴 편액)을 받았다. 대원군의 서원철폐 당시에도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조광조 선생은 연산군 때의 폭정을 개혁하기 위하여 중종에 의해 등용된 인물로, 향약 보급운동, 반정공신위훈 삭제, 현량과 실시 등 각종 개혁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개혁의 내용이 급진적이어서 훈구대신들이었던 남곤(南袞), 심정(..

경기도, 인천 2016.12.11

여주 상교리 고려 석실묘

소재지 :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산46-1 지정번호 : 경기도 기념물 제198호. 고달부락 뒷산에 위치한 이 고분은 상감청자편을 비롯한 몇 가지 발굴된 유물을 통해 고려말기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시대 묘제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발굴 전에 이 고분의 기단부는 완전히 흙속에 묻혀 있었고, 기단 2층과 석실 입구 부분의 돌만이 노출되어 있었다고 한다. 고분의 발굴작업은 1983년 11월~12월 한양대박물관 발굴단에 의해 완료되었는데, 하부의 석실평면이 원형에 연도가 달려있고, 상부는 방형의 2층 기단으로 된 특이한 구조여서 그 구조의 특성을 살려 상방하원 석실묘란 명칭이 붙여졌다. 지상 구조는 2층의 제단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기단 1층은 동서가 442cm, 남북이 280cm, 높이는 46cm의 ..

경기도, 인천 2016.07.06

여주 고달사址

사적 382호 고달사지. 국보 제4호 고달사지 부도. 보물 제6호 원종대사 혜진탑비 귀부 및 이수. 보물 제7호 원종대사 혜진탑. 보물 제8호 고달사지 석조대좌. 보물 제 282호 쌍사자석등(1959년 국립중앙박물관 이전). 여주 혜목산 기슭의 고달사(高達寺)는 통일신라 경덕왕 23년(764)에 건립된 것으로 전한다. 이 절은 고려 시대 초기에 국가가 관장하는 3대 선원 중의 하나로 광종 이후 역대 왕들의 비호를 받던 중요한 사찰이었다. 975년에 세워진 원종대사 비문에 의하면 당시에는 고달원 또는 고달선원으로 불렸다고 한다. 1530년에 간행된 에 고달사가 기록된 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까지까지는 번창했으나, 1799년에 편찬된 에는 폐사된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정확히 언제 폐사된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경기도, 인천 2016.05.12

얼어붙은 연천, 포천의 폭포들, 화적연, 교동 가마소

겉보기엔 부근에 전혀 폭포가 있을 것 같지 않은 지형인데 길 오른편 바로 아래에 재인폭포가 있다. 지난 여름 엄청난 위용을 내뿜으며 수직으로 내리꽂던 폭포가 이렇게 말라붙다시피 되었다. 폭포 하류에는 물 한줄기 흐르지 않는다. 한탄강의 지질을 연구하기에는 이렇게 폭포가 마른 겨울이 좋을 것이다. 한탄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형 중의 한곳인 재인폭포는 오래전부터 연천군 최고의 명소로 알려져 왔다. 북쪽에 있는 지장봉에서 흘러내린 물이 높이 약 18m에 달하는 현무암 주상절리 절벽으로 쏟아지는 모습이 장관이다. 현재 폭포의 위치는 (두부)침식작용으로 한탄강에서 약 300m 이상 거슬러 올라간 것으로 추정한다. 폭포 아래에는 다양한 암석들과 더불어 하식동굴, 용암가스튜브 등이 관찰된다. 또한 이곳은 천연기념물 ..

경기도, 인천 2016.04.13

포천 영평천 창옥병 주변의 각자(바위글씨)

우리는 금수정을 중심으로 금수정 앞의 금수정, 동천석문, 회란석 암각문 무리와 금수정 오른쪽 아래 강 한복판과 그 주변에 새겨진 경도, 증금옹 암각문 무리, 금수정 왼쪽 아래 강가의 창옥병 주변의 암각문 무리로 크게 나누어 이동하며 보았다. 가장 눈에 두드러지고 유려하여 '우리나라에도 이런 암각문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놀란 것은 양사언의 글을 새겼다는 '경도' 각자였다. 줄거리가 있고 판독도 쉬운 것은 창옥병 산금대의 한석봉이 쓴 '송균절조 수월정신'이었다. 영평천 주변의 많은 바위에 새겨진 글들은 마모되어 판독이 어려운 것들이 많아 아쉬웠고 아직까지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밝혀지지 않은 것도 있다고 한다. 창옥병은 영평 8경 중 3경으로 깎은 듯한 작은 절벽으로 절벽에 굴곡, 고저, 암혈, 동물모양의..

경기도, 인천 2016.04.12

포천 영평천 금수정 주변의 각자(바위글씨)

답사 일자 : 2016. 2/6. 답사 장소 : 포천 영평천 금수정 주변의 암각글자들 앞쪽 바위에 금수정 암각글씨가 있고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는 위쪽에는 재건된 금수정이 있다. 겨울 갈수기라 우리는 바위 아래로 난 길을 걸어 금수정 각자를 보았지만 여름이나 비가 많은 시기에는 가파르고 바위가 미끄러워 상당히 위험하다. 중국사신 허국이 쓴 '회란석(廻瀾石)'이란 글자를 새긴 것이라고 하는데 '란석(瀾石)'만 남아있다. 회란석(廻瀾石) 각자 왼쪽에 보이는 바위 뒤에는 한호선생의 친필 각자가 일부 남아있다. 영평천 주변의 바위는 밀가루로 반죽한 것처럼 희고 고운 바위도 있고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갈라지거나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많은데 이곳에 암각글씨가 놀라울 정도로 많았다. 각자가 가능한 바위들이 많은 ..

경기도, 인천 2016.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