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인천 153

이천 어석리 석불입상

지정별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7호. 소재지 :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어석리 564-1. 야산을 등지고 마을 한가운데 있는 4.32m의 석불입상으로 두 덩어리의 사각형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다. 이 미륵불상은 민머리로 그 위에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가 표현되었고 머리에는 팔각의 보개(寶蓋)를 쓰고 있다. 보살과 부처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보살상과 불상 두 가지 형태로 제작되는데, 이것은 불상의 형태이다. 불상의 얼굴은 네모진 이마에 뺨과 턱은 둥글고 양 볼의 살이 약간 빠진 상태이다. 이마에는 이 세상을 비추는 광명을 상징하는 백호가 있고 아래로 처진 눈썹과 눈꼬리가 긴 눈, 짧지만 오똑한 코, 얼굴에 비해 작은 입이 표현되었다. 큰 두 귀는 어깨에 닿고 목에는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하는 ..

경기도. 인천 2020.10.06

이천 신흥사 석불입상, 좌상

신흥사에 오래된 느낌의 석불은 입상 1개와 좌상 1개가 있었는데 안내문이 없었다. 있는데 놓친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없었는지 알 수 없으나 카페지기님의 성격 상 유형문화재로라도 지정되지 않으면 따로 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안내문을 놓쳤을 가능성이 높다. 신흥사는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는 극락보전이 주불전이었고, 그 외에 나한전, 범종각, 월성당이란 전각이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절로 오르는 언덕길에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불상들이 있었고 그 중에 우리가 찾는 불상 2기도 있었다. 범종각 오른쪽 위로 얼핏 보이는 건물은 극락보전이고, 그 윗단(언덕)에 나한전이 있다. 지장보살, 석가모니불, 포대화상, 달마대사 등 많은 불상들과 석등, 석탑들이 입구쪽에 놓여있다. 연화좌에 앉은 석불 좌..

경기도. 인천 2020.10.05

이천 소고리 마애여래 좌상, 마애삼존석불

지정별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9호. 소재지 :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소고리 산 91-9. 마옥산 기슭의 커다란 바위면에 선각된 높이 4.7m의 마애여래 좌상으로 동쪽을 향해 부처가 좌선할 때 취하는 책상다리 자세인 결가부좌를 하고 있다. 여러 겹의 원형 두광(頭光)과 두 겹의 신광(身光)을 갖추고 있으며 민머리(素髮)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상투 모양의 육계(肉髻)가 큼직하게 솟아있고, 넓적하고 둥근 얼굴에는 눈꼬리가 긴 눈과 코, 굳게 다문 입 등이 묘사되었다. 두 귀는 길게 늘어졌고 목에는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하는 삼도(三道)가 표현되었다. 옷(法衣)은 두 어깨를 모두 덮는 통견으로 전면에 많은 옷주름 등과 더불어 규칙적이라기 보다는 해이해진 모습이다. 풍만한 얼굴과 건장한 신체, 안정감 있는 ..

경기도. 인천 2020.10.05

이천 설봉서원(雪峯書院)

유학의 진흥과 장학을 목적으로 창건된 설봉서원(雪峯書院)은 소수(紹脩)서원, 남계(藍溪)서원, 서악(西岳)서원에 이어 조선 명종 19년(1564) 이천(利川)부사였던 정현(鄭礥)이 유림의 공의에 따라 지금의 이천시 안흥지 주변에 세운 서원이다. 선조 임진왜란(1592) 때 전 설봉산 아래로 옮기면서 설봉서원(雪峯書院)으로 명명되었다. 이 서원은 원래 복천(福川) 서희(徐熙) 선생을 모시다가 율정 이관의(李寬義) 선생, 모재 김안국(金安國) 선생을 배향하여 삼현사(三賢祠)로 불리우다가 철종 8년(1857) 소요재 최숙정(崔淑精) 선생을 함께 배향하여 四賢이 봉안되었으며, 유림들이 매년 춘추로 제향을 올리고 학문을 강론하면서 젊은 선비들을 가르치던 사학교육기관이었다. 그런데 고종 8년(1871)에 300여년..

경기도. 인천 2020.10.04

이천 선읍리 입상석불, 두미리 미륵댕이석불

≪이천 선읍리 입상석불≫ 지정별 : 경기도 향토유적 제10호 소재지 : 경기도 이천시 장원읍 선읍리 산110. 1986년 4월 이천시 향토유적 제 10호로 지정되었다. 설성산 기슭의 신흥사로 오르는 진입로에 있는 불상으로 원래는 불상 전체를 1석으로 조성한 것이 아니라 대좌, 불신, 불두, 보개 등 네 부분으로 나누어 각각 1석으로 조성한 후 연결시켜 안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각 부분이 선읍리 마을 앞 시냇가와 그 옆 논바닥에 흩어져 묻혀 있었는데 1978년 여름에 장마로 흙이 씻겨 내려가면서 밖으로 드러나게 되자 마을 앞 광장에 두었다가 신흥사 주지 월선스님이 현재의 위치로 옮겨 봉안하였다. 불두 부분은 발견되지 않아 1983년에 새로 조성하여 안치하였다. 대좌는 자연석 윗부분을 다듬은 뒤 5엽..

경기도. 인천 2020.09.28

강화 정족산사고지(鼎足山史庫址)

지정 :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7호. 을 보관하던 사고(史庫)인 장사각(藏史閣)과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던 선원보각(璿源譜閣)이 있던 곳이다. 조선은 초기부터 을 춘추관, 충주, 성주, 전주 등 네 곳에 나누어 보관하였다.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고 유일본으로 남은 전주사고본이 묘향산사고로 옮겼다 다시 마니산사고를 거쳐 현종 1년(1660) 이곳으로 옮기고, 오른쪽에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선원보각(璿源譜閣)을 함께 지었다. 1931년에 간행된 에 이 사고의 사진이 수록된 것으로 보아 이후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실록은 1910년 국권 침탈 이후 서울로 옮겨졌고, 지금은 서울대학교규장각에서 보존, 관리하고 있다. 1998년 두 건물을 복원 후 옛 현판 '장사각(藏史閣)'과 '선원보각(璿源譜閣)'을 다시 달았..

경기도. 인천 2020.09.25

2018.7월 / 2019.6월의 강화도 전등사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 아도(阿道)화상이 창건했으며, 진종사(眞宗寺)라 하였다. 고려 충렬왕 8년(1282) 정화궁주의 옥등 시주와 인기스님이 남송(南宋)에서 대장경을 들여오면서 '부처님 법의 등(燈)이 전해진 곳'이라 하여 전등사(傳燈寺)로 이름이 바뀌었다. '옥등'의 밝음도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하며, '전등'은 부처님의 지혜가 전해진 것을 뜻한다. 윤장대란 불교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돌릴 수 있게 만든 것으로, 윤장대를 한 번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이 있다고 한다. 전등사 윤장대는 보물 제684호를 똑같이 재현한 것이다. 윤장대를 세운 이유는 부처님 법이 사방에 널리 퍼지라는 의미와 우리 나라에 지세를 고르게 해 난리가 없고 비바람이 순조로워 풍년이 들고 태평성대..

경기도. 인천 2020.09.24

이천 동산리 마애여래상, 대포동 석조여래입상

이천시 향토유적 제9호 소재지 : 이천시 호법면 동산리 산 121. 동산리 남서쪽 대덕산 기슭에 위치해 있다. 불상은 화강암 자연석을 깎아 높이 203cm, 폭 79~91cm, 두께 15~20cm의 왼쪽으로 기운 사각형 판석을 세우고, 그 앞에 세련되고 유연한 조각 솜씨로 여래(如來)의 입상을 1cm 깊이로 선각해 놓았다. 머리는 소발이며 육계가 높직하고, 상호는 둥글고 원만하며 코 부위는 약간 마모되었다. 큰 귀는 양 어깨까지 늘어져 있으며, 목에는 3도가 뚜렷하다. 옷은 통견의로서 무늬는 사선 또는 밑으로 자연스럽게 흘려 선각해 놓았다. 오른손은 가슴에 올려 엄지와 검지를 마주 댄 아미타여래의 구품인 중 상품중생(上品中生)의 수인을 하고 있다. 왼손은 엄지를 구부린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배 위에..

경기도. 인천 2020.09.22

이천 갈산리 석불입상

향토유적 제7호. 소재지 : 이천시 갈산동 83. 이 화강암 석불은 조성 당시 상하 두 부분으로 나누어 허리 부분에서 연결하도록 되었으나, 오래 전 도괴되어 목, 동체(銅體), 허리 등이 떨어진 채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80년경 시멘트 보강으로 현 위치에 복원해 놓은 것이다. 머리는 소발(素髮)로 높직하여 위가 편편하여 두건을 쓴 모습과 흡사하고 상호는 원만하나 양쪽 볼이 약간 비대하여 고려 불상(高麗 佛像)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마의 큼직한 백호공(白毫孔)은 보주를 박았던 흔적이며, 양미안은 밑을 굽어보며 조는 듯한 수려한 모습이다. 양쪽 볼과 턱, 비량(鼻梁)과 구순 부위는 심한 파손을 입었다. 목에는 3도가 뚜렷하고 법의는 통견으로 양팔에 걸쳐 밑으로 흐르면서 약간씩 퍼져 있고, 허리에서 발목..

경기도. 인천 2020.09.22

광주 유정리 석불좌상

지정종별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8호 위치 :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도척로 699번길 51 (유정리 222-3). 이 좌불상은 호분(胡粉)을 너무 많이 발랐기 때문에 세부적인 모습은 잘 알 수 없지만 체구에 비해서 머리가 유난히 큼직한 조선시대의 불상이다. 무릎 역시 상체에 비하여 워낙 작아서 전체적인 비례가 맞지 않는 편이다. 또한 무릎 위에 올린 선정인(禪定印)의 손은 빈약하고 팔의 양감도 보잘것 없으며, 옷주름도 세련되지 못하여 도식적인 솜씨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큼직한 얼굴에 보이는 온화한 분위기는 부처님의 세계를 애써 전달하고자 하는 면모가 엿보여 한가닥 호감을 느끼게 한다. --현지 안내문-- 닫힌 보호각 문을 열고 광주 유정리 석불좌상을 처음 본 순간 온순하고 친근감이 들었다. ..

경기도. 인천 2020.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