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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왓 답사기3 (인공 섬 닉 뽀안과 '아름다운 폐허' 따 프롬)

쁘레아 칸에서 10분 남짓 버스로 이동하니 닉 뽀안 입구이다. 표를 보이고 다시 조금 걸어 들어가자니 지뢰로 팔, 다리를 잃은 사람, 맹인 등 대여섯이 악기를 연주하며 구걸을 하고 있다. 여러 나라 말로 쓴 글귀 중에 이란 한국어도 보인다. 유적지에서 자주 마주친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은 관광객이 지나가면 용케 어느 나라 사람인지를 알아맞히고 우리가 지나갈 땐 을 연주했다. 베트남과 정글을 국경으로 한 탓에 베트남 전 때 미국이 베트공 섬멸을 위해 캄보디아까지 무차별 폭격을 했고 70년대 중반의 내전으로 이 나라는 온통 지뢰밭이 되어 버렸다. 그 피해자는 민간인, 특히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닉 뽀안(똬리를 튼 뱀이란 뜻)은 자야바르만 7세가 관음보살에게 봉헌한 거대한 관개치수용 저수지 중앙의 성소를 말한..

캄보디아 2012.05.31

앙코르 왓 답사기2 (쁘레아 칸과 먹거리, 마실거리, 토양과 나무)

2010.1/15-1. 앙코르 톰과 쁘레아 칸, 그리고... 첫날인 오늘은 아침 8시 반 집합이다. 어제 밤 오늘의 답사지를 훑어보다 늦게 잠이 들었다. 호텔에서 튼 경쾌한 음악소리에 7시에 눈을 떴다. 2층 객실에서 창밖으로 내려다보니 파란 수영장과 초록의 야자나무, 꽃 향기가 상큼하다. 사람들이 수영장 옆 야외 벤치에서 삼삼오오 모여 아침을 먹고 있고 그 중의 반은 일행이다. 8시 쯤에 내려가 호텔의 뷔페식으로 아침을 먹었다. 동남아인들이 많이 먹는 쌀국수와 계란 요리(프라이드, 스크램블드에그)만 별도 코너에서 직접 요리해주고 나머지는 뷔페식이다. 나는 여행할 때 현지식을 즐기는 편이다. 입에 꼭 맞지 않더라도 현지식을 먹으면 그 사람들의 먹거리나 문화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곳은..

캄보디아 2012.05.31

앙코르 왓 답사기1 (여권이 바뀌어 난리 친 출발부터 호텔 투숙까지)

2010. 1/14~1/18. 1월 14일(목). 일정 오후 2시, 콜택시로 김포공항에 가서 인천국제공항행 리무진 버스를 탔다. 30여분 먼에 전용도로로 인천공항에 도착하기 5분 전, 습관적으로 쌕을 점검하다 충격적으로 딸 아이 여권만 발견했다. 분명 엊저녁에 점검을 했는데 여권 표지 견출지의 이름표가 큰딸과 같은 초록색이라 벌어진 일이다. 이 일을 어쩐다! 되돌아가자니 시간이 빠듯하다. 사소한 실수로 그렇게 기다렸던 앙코르 왓 답사를 포기해야 되나 싶으니 갑자기 속이 뒤틀리고 눈앞이 캄캄하다. 택시 타고 되돌아가야 하나 리무진을 타고 되돌아가야 하나 가늠을 해도 시간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어 곤혹스러웠다. 심호흡을 하고 생각을 되짚으니 방과후 수업을 들으러 간 작은 딸이 파할 시간이다. 휴대폰으로 S..

캄보디아 2012.05.31

국민약골 경로부대의 경주 남산완전정복 3일차-2

2009. 12. 27. 경주 남산완전정복 3일차-2 칠불암을 되돌아 나와 20여분 만에 하산을 해서 다음 코스인 미륵곡 보리사지의 석불좌상을 보러 차로 이동하다. 석축 비탈길을 올라 으리으리한 새 대웅전을 지나니 삼성각 옆 왼쪽 끝에 불상의 옆모습이 보인다. 우리 뒤에 초등학생 남매를 앞세우고 부부가 따라오는데 남매의 공중도덕 매너가 말이 아니다. 절과 그 앞의 몇 채 안 되는 인가를 지나면서 인기척이라곤 없었는데 두 꼬마의 떠드는 소리가 적막을 깨며 감상마저 방해한다. 하지만 그 부모는 제재할 기미가 전혀 없다. 불상 촬영을 하는데도 불상 앞에서 어찌나 정신없이 떠들고 오락가락하는지 비켜달라는 양해를 구했는데도 불상 사진에 그 꼬마들이 유령처럼 몇 컷인가 찍힌다. 석굴암 본존불보다 조금 더 근엄한 석..

경상도 2012.05.31

국민약골 경로부대의 경주 남산완전정복 3일차-1

남산리 삼층석탑 2009. 12. 27. 맑았다 눈 옴 숙소에서 짐을 꾸려 나오다. 오늘은 일정에 다소 여유가 있다고 특별히(!) 8시 집합이다. 숙소 근처에서 아침을 먹고 오늘의 주 코스 입구에 있는 서출지로 가다. 여름의 화려한 연꽃과 배롱나무 꽃은 볼 수 없지만 말라버린 연잎과 정자가 어울려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開見二人死 不見一人死(열어서 보면 두 사람이 죽고, 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 다음은 바로 곁의 남산리 삼층석탑이다. 얼핏 같아 보이지만 동, 서 두 탑이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처럼 크기와 양식이 다르다. 서탑의 5층의 지붕돌 아래에서 처음으로 빗물 홈을 찾다. 동탑은 모전석탑이고 서탑은 일반 석탑 형식인데 기단에 팔부중상을 새겼다. 석탑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양식이다. ..

경상도 2012.05.31

국민약골 경로부대의 경주 남산완전정복 2일차-2

2009. 12. 27. 맑음 답사 내내 비슷한 불상의 호칭과 지명 때문에 애를 먹다. 오늘 답사지는 표지판에는 삼릉이라고 적혀있는데 계곡이 깊어 여름에도 찬 기운이 돌아 냉골이라고도 한단다. 종교와 관련한 문화재는 문외한인데다 비슷비슷한 불상과 많은 지명들 때문에 더욱 혼란스럽다. 같은 삼릉계곡에 있는 데도 어느 것은 삼릉계, 다른 것은 삼릉계곡이라 적혀있고 같은 유적인데도 부처골, 불골 하는 식이다. 이어 지척에 있는 삼릉계곡 선각육존불을 보다. 돋을새김을 하지 않고 선으로만 2개의 바위에 그렸다. 왼쪽 바위에는 입상 본존불을 좌우에서 앉은 보살이 보좌하고, 오른쪽의 바위는 반대로 앉은 본존불을 좌우에서 선 보살들이 보좌하는 형태인데 왼쪽 바위의 그림이 훨씬 눈에 잘 들어온다. 오른쪽을 석가삼존이라 ..

경상도 2012.05.31

국민약골 경로부대의 경주 남산완전정복 2일차-1

2009. 12. 26. 맑음 7시 반에 울산의 숙소 출발하다. 바람은 차지만 어제와 달리 날이 쾌청하다. 숙소 인근에 있는 간월사지에 들러 쌍탑과 울산지역에서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을 보다. 목 부분과 오른 팔을 보수했지만 원형이 잘 보존된 통일신라의 불상이다. 절은 남아있는 주초석만 보면 규모가 작은 편이고 쌍탑이 제대로 남아있다. 탑신 4면에는 각각 2명의 금강역사상이 새겨 있다. 일행은 팔부신중 같다는데 석굴암 입구의 금강역사상과 닮은꼴이다. 석조여래좌상이 안치된 이름 없는 맞배지붕 건물 앞 양쪽의 대머리에 팔이 훼손되고 아래 눈두덩이가 두툼한 석조상이 인상적이다. 8시 10분 경 지나는 길에 있는 국밥집에 들러 아침을 먹고 예정된 천전리 각석과 반구대 암각화를 향해 출발하다. 40분..

경상도 2012.05.31

국민약골 경로부대의 경주 남산완전정복 1일차

2009. 12. 25. 흐림 잠든 지 2시간 만에 새벽 5시 기상. 늦을까 조바심을 하며 아침을 먹고 약속 장소 강남역으로 가다. 7시 30분 도착. 일행인 천년사랑님과 동시에 도착하여 또 다른 일행인 퍼플 크리스탈님을 태우러 인덕원으로 향하다. 오늘부터 영하 7도까지 내려간다 해서 염려했는데 날이 끄느름해서 그렇지 아직은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두 분은 처음 보는 사이라는데 몇 년 지기처럼 말씀도 많고 웃음도 많다. 차안에서 경주 남산에 대한 책자와 카페지기이자 여행 리더인 광나루님이 준비한 안내 책자로 사전 공부를 하다. 광나루님의 안내 책자를 다 읽고 눈을 잠깐 붙였다 깨니 출발한지 2시간 반 만에 화서휴게소 도착. 화장실에 들렀다 나오는데 정확히 그 문 앞에서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다. 세상 참 좁..

경상도 2012.05.31

09.1122.용인의 경신공주-이애부부묘, 해주오씨 재실

오달제선생은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대항할 것을 주장하다 끌려가 살해당한 분이다. 요새 인가 하는 뮤지컬로 공연 중이다. 동행한 분들이 많이 궁금해 했던 씨앗이다. 씨앗은 나름 아름답지만 다른 나무에 덩굴을 감고 기생하는 얌체이다. '~빵'이 들어간 식물은 대체로 덩굴 기생식물이다. 경신공주는 태조 이성계의 장녀이고, 이애는 그녀의 남편이다. 수수 같지만 나무 열매이다. 마침 오늘 시제를 지냈다고 한다. 그 뒤처리로 소각 중... 친절한 종손 분이 기억에 남는다. '삐까번쩍'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해주 오씨묘역(와, 진짜 넓고 잘 가꿨다!)의 용인에 많진 않지만 쌓일 정도로 눈이 왔다. 올들어 처음 접한 제대로 된 눈!

경기도, 인천 2012.05.31

09.1122선정릉,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 등

임진왜란 때 왜구에 의해 성종과 중종 부자의 주검이 능 밖으로 끌려나와 훼손된 곳이다. 조선 역사를 통털어 왕릉으로서는 최대의 수모가 아닐까 생각한다. 오페르트에게 도굴 당할 뻔한 남연군묘는 그래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특히 중종의 정릉은 문정왕후의 욕심으로 소득없이 능이 천장되고 나서 물에 잠기는 수난까지 당했다. 하지만 지금의 선정릉은 강남 한 복판에서 훌륭한 휴식처가 되고 있다. 구청에서도 신경 써서 돌보는 흔적이 역력했다. 아들을 낳고 싶은 사람들이 갈아마셨다나? 거참,,, 11월인데... 무슨 열매일까? 하필 왜 신도비 아래에서 죽었는지...

서울특별시 2012.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