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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답사2- 가회동 백인제 가옥, 가회동성당, 서울 재동 백송

≪손병희 선생 집터≫서울 종로구 가회동 170.손병희 선생(1861~1922)은 구한말의 천도교 지도자이자 3·1운동을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1897년에 동학의 3대 교주가 되었으며, 3·1운동 때에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으로 3·1운동을 주도하였다. 이곳에서 1919년 2월 28일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었다. ≪가회동 백인제 가옥≫지정번호 :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 22호.소재지 : 서울 종로구 북촌로7길 16 (가회동).북촌의 높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백인제 가옥은 한성은행 전무였던 한상룡에 의해 1913년에 건립되었다. 주변가옥 12채를 사들여 마련한 907평의 큰 대지에 압록강 흑송을 사용하여 건축하였다고 한다. 사랑채와 안채가 확연히 분리되는 전통한옥과 달리 ..

서울특별시 2024.12.16

북촌 답사1- 안(국)동별궁 터, 안동교회, 윤보선 가옥, 정독도서관

≪안(국)동별궁 터≫구 풍문여고, 현 서울공예박물관.처음에는 세종의 막내아들 영응대군의 집이었으며 세종은 이곳에서 승하했다. 영응대군이 아들 없이 죽자 부인은 성종에게 집을 바쳤고, 성종은 부친인 의경세자의 사당(의경묘)을 만들고 형인 월산대군이 봉사하도록 했다. 중종 때 혜순옹주, 인조 때 영창대군의 누나인 정명공주, 숙종 때 연령군의 궁가가 되었다. 고종 때 왕세자 순종의 가례소(嘉禮所)가 되었고, 일제강점기에 민영휘와 최창학에게 팔렸으며 1944년 민영휘의 증손인 민덕기가 증조모 안유풍(민영휘의 부인)의 유지에 따라 폐교된 정신여학교를 인수하여 이곳에 풍문여학교를 설립했다. 현재 서울공예박물관이 들어서 있다.안국동 별궁은 일제 강점기인 1936년에 민간에게 매각되면서 건물들이 팔려나갔다. 경기도 고..

서울특별시 2024.12.14

강화 내가 오상리 고인돌군(지석묘)

≪강화 내가 오상리 고인돌군(지석묘)≫고인돌(지석묘)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지상에 석실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식과 땅속에 석실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오상리 고인돌은 탁자식으로, 이곳에서 돌칼, 돌화살촉, 민무늬토기 등이 출토되어 당시의 생활상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오상리 고인돌은 2000년 4월부터 2001년 10월까지 선문대학교 고고연구소 발굴단(단장 이형구)에 의해 발굴되었으며 고려산 서쪽 낙조봉의 능선 끝자락에 위치한 해발 76m의 조그마한 야산의 낙타 등 같은 능선에 12기..

경기도, 인천 2024.12.11

석모도 보문사, 강화산성 서문

≪석모도 보문사≫인천광역시 강화군 석모도 낙가산 보문사는 신라 선덕여왕 4년(635)에 회정대사가 창건하여 관세음보살이 상주한다는 산의 이름을 따서 낙가산이라 하였고,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의 원력이 광대무변함을 상징하여 절의 이름을 보문사라 하였다. 경내에는 나한실(석실), 마애석불좌상, 맷돌, 향나무 등이 인천지정문화재 및 인천시문화재자료, 인천지방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또한 보문사는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한국관광공사에서 지정한 '한국33관음성지'이기도 하다.* PS : 한국 3대 관음성지 - 강화도 석모도 보문사, 부산 보타산 해동용궁사,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 PS : 한국 33관음성지 (재미삼아 찾아보긴 했는데 불자가 아니라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주문부터 올..

경기도, 인천 2024.12.10

강화 가릉과 능내리 석실분

≪강화 가릉(嘉陵)≫ 사적강화 가릉은 고려 24대 원종의 왕비인 순경태후(1222~1237)의 능이다. 순경태후는 고종 22년(1235) 원종이 태자가 되자 태자비인 경목현비가 되었으며, 다음 해에 아들인 충렬왕과 딸을 연이어 낳고 1237년에 1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순경태후는 무신정권 최고 권력자인 최우의 외손녀로 외증조부는 최충헌이다. 아버지는 당시 왕이었던 고종의 신임을 받던 문인 김약선이었다. 가릉은 지하에 돌방과 입구를 만든 돌방무덤이다. 무덤 주변의 석조물은 모두 없어지고 봉분도 무너졌으나 1974년에 보수 정비하였다. 이후 2004년에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조사사업을 시행하여 재정비하였다. 강화 가릉은 고려 강종의 비인 원덕태후의 곤릉과 함께 남한지역에 단 2기 밖에 남아 있지 않..

경기도, 인천 2024.12.09

강화도 초지진, 굴암돈대, 삼별초항쟁비와 망양돈대

≪강화 5진 7보 54돈대≫진(鎭)과 보(堡)는 군사상 중요한 지역, 주로 해안 변방에 설치하여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던 군사주둔 지역이다. 진과 보는 현대의 군대체계로 비유하면 진(鎭)은 대대병력, 보(堡)는 중대병력이 머물렀으며, 돈(墩)은 3~5명 정도가 지킨 초소이다. 진이나 보에는 일반적으로 포대가 소속되어 있었다.  * 강화 5진 : 월곶진, 제물진, 용진진, 덕진진(사적 제226호), 초지진(사적 제225호)* 강화 7보 : 광성보(사적 제227호), 선두보, 장곶보, 정포보, 인화보, 철곶보, 승천보 * 강화 54돈대 : 갑곳, 계룡, 덕진, 택지, 장곶, 광성, 선수(송강), 무태, 좌강, 초지, 삼암, 분오리, 손돌목, 가리산, 걸곶, 건평, 검암, 광암, 굴암, 귀등, 낙성, 동검, 망..

경기도, 인천 2024.12.08

죽서루, 삼척도호부 객사

외삼문 안에 죽서루와 복원한 삼척도호부 객사인 진주관과 응벽헌이 있다. 외삼문 안쪽은 예전에 삼척도호부가 있었다. 도호부에는 지방의 수령이 집무를 보던 동헌이나 아전들이 사무를 보던 건물, 감옥, 수령의 살림집인 내아 등이 있고, 왕에게 예를 올리거나 중앙의 손님을 받는 객사 등이 있었을 것이다. 죽서루 아래, 객사 앞이 관아였으나 현재는 빈터이다. 그나마 객사는 복원한 것이다. --삼척 죽서루(三陟 竹西樓)--국보.이 누각이 언제 창건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고려 명종 때의 문인 김극기가 쓴 죽서루 시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12세기 후반에 이미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후 태종 3년(1403) 당시 삼척부사 김효손이 고쳐 지었다. 절벽 위 자연 암반을 기초로 하여 건축되었고, 누(樓) 아..

강원도 2024.11.20

삼척 척주동해비, 대한평수토찬비

--삼척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 대한평수토찬비(大韓平水土讚碑)--*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는 숙종 때의 학자 미수 허목(1595~1682)이 쓴 4언 고시 192자로 된 고풍체의 시이며, 허목 서예(篆書體)의 진수를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장방형의 화강석 기단 위에 오석으로 만들었으며 뚜껑돌 없이 윗부분을 밋밋하게 처리하고 비석 받침(비좌)에는 연꽃무늬와 구름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척주동해비는 조선 현종 2년(1661)에 처음 세워졌다. 당시 삼척은 파도가 마을까지 몰아치고 강이 넘치는 등 수해가 극심하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삼척부사 허목(1595~1682)이 자연재해로 인한 민심을 진정시키기 위해 동해바다를 칭송하는 글인 동해송(東海頌)을 짓고 옛 전서체로 써서 정라진 앞 만리도에 동해비를 세우니 ..

강원도 2024.11.19

삼척 해가사의 터, 공양왕릉

--해가사(海歌詞)의 터--「삼국유사」에 나오는 향가 와 의 배경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의 터로 추정되는 곳은 삼척시 임원과 용화 사이로 수로부인헌화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의 터로 추정되는 곳은 증산마을 부근으로 수로부인공원을 조성해 놓고 일명 '해가사의 터'로 부른다. 해가사 터인 임해정은 「삼국유사」 '수로부인전'의 라는 설화를 토대로 복원되었는데 원래의 위치로 추정되는 곳은 군사보호시설이라 주변경관이 수려한 현재의 증산동 해변에 조성되었다. 해가사의 터에는 해가사의 비, 임해정, 사랑의 여의주가 설치되어 있는데 사랑의 여의주는 누구나 돌릴 수 있으며, 헌화가 배경 그림이 멈추면 연인들의 사랑이 영원하고, 해가사 배경 그림이 멈추면 묻어둔 사랑과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을 수 있다고 한다. ​--「삼국..

강원도 2024.11.19

산청 정취암(淨趣庵)

≪산청 정취암(淨趣庵)≫소재지 : 경남 산청군 신등면 둔철산로 675-87 전통사찰제8호유물 : 관음보살좌상(유형문화재 제543호), 산신탱화(지방문화재 자료 제243호)정취암(淨趣庵)은 산청군 소재지에서 동남방향 약 10km에 위치한 대성산(일명 둔철산)의 기암절벽 사이에 자리한 절로 상서로운 기운이 있다 하여 예로부터 소금강이라 일컬었다. 신라 신문왕 6년(686) 때 의상조사가 금강산에 원통암을, 대성산에 정취사(正趣寺)를 창건하였다. 정취암은 「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조선중기 기록에는 정취사(正趣寺)로 기록되어 있으나, 조선후기에 조성된 불화와 문서에는 정취암(淨趣庵)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취암(淨趣庵)은 정취관음보살을 본존불로 봉안하고 있는 유일한 사찰이며,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경우는 찾아볼 ..

경상도 2024.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