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인천 156

이천 자석리 석불입상

지정별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41호.소재지 : 경기도 이천시 설성면 자석리 산51.석불이 있는 이곳은 예로부터 미륵당이라고 전하는데 높은 석축을 쌓고 그 중앙에 석불을 모시고 있다. 전체 2매의 석재로 이루어져 있고 머리에는 둥근 갓이 얹혀져 있다. 얼굴은 긴 타원형으로 이마의 중앙에는 이 세상에 비추는 광명을 상징하는 백호(白虎)가 표현되어 있으며 두 귀는 비교적 짧고 목에는 번뇌, 업, 고난을 상징하는 삼도(三道)가 표현되어 있다. 얼굴 크기에 비해 눈, 코, 입, 귀 등 각 부분이 작게 표현되어 전체적으로 조화와 균형을 잃고 있다.옷(法衣)은 두 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通肩)으로 희미한 옷주름이 아래쪽으로 흐르고 있으며 두 손과 함께 마멸이 심해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뒷면은 아무런 조각 없이..

경기도, 인천 2020.10.12

이천 장암리 마애보살반가상, 이평리 석불입상, 관고동 석불입상

지정 : 보물 제982호. 소재지 :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장암리 183-1. 이 불상은 고려 경종 6년(981)에 미륵바위라는 화강암 앞면에 얕은 부조로 새긴 3.2m의 보살좌상이다. 머리에 씌어진 높은 보관에 화불(化佛)이 표현되어 있으며 손에는 연꽃 가지를 들고 있어 관음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이 보살상의 얼굴은 사각형에 가깝게 비대하며 넓은 이마, 큼직한 눈, 작은 입, 짧은 귀 등 얼굴과 이목구비가 부조화스러워 둔중한 느낌을 준다. 오른발은 내려 앙련좌 위에 얹고 왼발은 오른쪽 무릎 위에 걸친 반가 자세를 취했는데, 상체에 걸맞게 큼직하고 평면적인 형태이다. 보살의 옷은 두 어깨에 걸쳐 희미하게 표현되었고, 다리를 거쳐 대좌 아래까지 내렸는데 두 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 형태이다. 바위 뒷면에 ..

경기도, 인천 2020.10.07

이천 영월암 마애여래입상, 석조광배 및 연화좌대

지정별 : 향토유적 제14호.소재지 : 경기도 이천시 관고동 438번지.이천의 진산인 설봉산(雪峰山) 주봉 기슭에 자리 잡은 영월암(映月庵)은 이 고장의 대표적인 유서 깊은 고찰(古刹)이다. 문헌상으로는 조선 영조 36년(1760) 이후에 편찬된 이천지와 광무(光武) 3년(1899)에 나온 에는 모두 '북악사(北岳寺)' 란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그 이후로 '영월암' 이라 불려오고 있으며 현재는 조계종에 소속되어 있다. 영월암 중건기에 의하면, 지금부터 1,300년 전 신라 제30대 문무왕 때 海東 華嚴宗의 개조인 의상조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를 뒷받침할 만한 문헌이나 금석문 등 신빙자료가 없어서 그 사실 여부는 확인하기가 어렵다. 경내에는 고려 중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마애여래입상(보물 제882..

경기도, 인천 2020.10.06

이천 어석리 석불입상

지정별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7호. 소재지 :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어석리 564-1. 야산을 등지고 마을 한가운데 있는 4.32m의 석불입상으로 두 덩어리의 사각형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다. 이 미륵불상은 민머리로 그 위에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가 표현되었고 머리에는 팔각의 보개(寶蓋)를 쓰고 있다. 보살과 부처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보살상과 불상 두 가지 형태로 제작되는데, 이것은 불상의 형태이다. 불상의 얼굴은 네모진 이마에 뺨과 턱은 둥글고 양 볼의 살이 약간 빠진 상태이다. 이마에는 이 세상을 비추는 광명을 상징하는 백호가 있고 아래로 처진 눈썹과 눈꼬리가 긴 눈, 짧지만 오똑한 코, 얼굴에 비해 작은 입이 표현되었다. 큰 두 귀는 어깨에 닿고 목에는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하는 ..

경기도, 인천 2020.10.06

이천 신흥사 석불입상, 좌상

신흥사에 오래된 느낌의 석불은 입상 1개와 좌상 1개가 있었는데 안내문이 없었다. 있는데 놓친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없었는지 알 수 없으나 카페지기님의 성격 상 유형문화재로라도 지정되지 않으면 따로 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안내문을 놓쳤을 가능성이 높다. 신흥사는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는 극락보전이 주불전이었고, 그 외에 나한전, 범종각, 월성당이란 전각이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절로 오르는 언덕길에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불상들이 있었고 그 중에 우리가 찾는 불상 2기도 있었다. 범종각 오른쪽 위로 얼핏 보이는 건물은 극락보전이고, 그 윗단(언덕)에 나한전이 있다. 지장보살, 석가모니불, 포대화상, 달마대사 등 많은 불상들과 석등, 석탑들이 입구쪽에 놓여있다. 연화좌에 앉은 석불 좌..

경기도, 인천 2020.10.05

이천 소고리 마애여래 좌상, 마애삼존석불

지정별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9호. 소재지 :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소고리 산 91-9. 마옥산 기슭의 커다란 바위면에 선각된 높이 4.7m의 마애여래 좌상으로 동쪽을 향해 부처가 좌선할 때 취하는 책상다리 자세인 결가부좌를 하고 있다. 여러 겹의 원형 두광(頭光)과 두 겹의 신광(身光)을 갖추고 있으며 민머리(素髮)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상투 모양의 육계(肉髻)가 큼직하게 솟아있고, 넓적하고 둥근 얼굴에는 눈꼬리가 긴 눈과 코, 굳게 다문 입 등이 묘사되었다. 두 귀는 길게 늘어졌고 목에는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하는 삼도(三道)가 표현되었다. 옷(法衣)은 두 어깨를 모두 덮는 통견으로 전면에 많은 옷주름 등과 더불어 규칙적이라기 보다는 해이해진 모습이다. 풍만한 얼굴과 건장한 신체, 안정감 있는 ..

경기도, 인천 2020.10.05

이천 설봉서원(雪峯書院)

유학의 진흥과 장학을 목적으로 창건된 설봉서원(雪峯書院)은 소수(紹脩)서원, 남계(藍溪)서원, 서악(西岳)서원에 이어 조선 명종 19년(1564) 이천(利川)부사였던 정현(鄭礥)이 유림의 공의에 따라 지금의 이천시 안흥지 주변에 세운 서원이다. 선조 임진왜란(1592) 때 전 설봉산 아래로 옮기면서 설봉서원(雪峯書院)으로 명명되었다. 이 서원은 원래 복천(福川) 서희(徐熙) 선생을 모시다가 율정 이관의(李寬義) 선생, 모재 김안국(金安國) 선생을 배향하여 삼현사(三賢祠)로 불리우다가 철종 8년(1857) 소요재 최숙정(崔淑精) 선생을 함께 배향하여 四賢이 봉안되었으며, 유림들이 매년 춘추로 제향을 올리고 학문을 강론하면서 젊은 선비들을 가르치던 사학교육기관이었다. 그런데 고종 8년(1871)에 300여년..

경기도, 인천 2020.10.04

이천 선읍리 입상석불, 두미리 미륵댕이석불

≪이천 선읍리 입상석불≫지정별 : 경기도 향토유적 제10호소재지 : 경기도 이천시 장원읍 선읍리 산110.1986년 4월 이천시 향토유적 제 10호로 지정되었다. 설성산 기슭의 신흥사로 오르는 진입로에 있는 불상으로 원래는 불상 전체를 1석으로 조성한 것이 아니라 대좌, 불신, 불두, 보개 등 네 부분으로 나누어 각각 1석으로 조성한 후 연결시켜 안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각 부분이 선읍리 마을 앞 시냇가와 그 옆 논바닥에 흩어져 묻혀 있었는데 1978년 여름에 장마로 흙이 씻겨 내려가면서 밖으로 드러나게 되자 마을 앞 광장에 두었다가 신흥사 주지 월선스님이 현재의 위치로 옮겨 봉안하였다. 불두 부분은 발견되지 않아 1983년에 새로 조성하여 안치하였다. 대좌는 자연석 윗부분을 다듬은 뒤 5엽의 연..

경기도, 인천 2020.09.28

강화 정족산사고지(鼎足山史庫址)

지정 :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7호. 을 보관하던 사고(史庫)인 장사각(藏史閣)과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던 선원보각(璿源譜閣)이 있던 곳이다. 조선은 초기부터 을 춘추관, 충주, 성주, 전주 등 네 곳에 나누어 보관하였다.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고 유일본으로 남은 전주사고본이 묘향산사고로 옮겼다 다시 마니산사고를 거쳐 현종 1년(1660) 이곳으로 옮기고, 오른쪽에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선원보각(璿源譜閣)을 함께 지었다. 1931년에 간행된 에 이 사고의 사진이 수록된 것으로 보아 이후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실록은 1910년 국권 침탈 이후 서울로 옮겨졌고, 지금은 서울대학교규장각에서 보존, 관리하고 있다. 1998년 두 건물을 복원 후 옛 현판 '장사각(藏史閣)'과 '선원보각(璿源譜閣)'을 다시 달았..

경기도, 인천 2020.09.25

2018.7월 / 2019.6월의 강화도 전등사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 아도(阿道)화상이 창건했으며, 진종사(眞宗寺)라 하였다. 고려 충렬왕 8년(1282) 정화궁주의 옥등 시주와 인기스님이 남송(南宋)에서 대장경을 들여오면서 '부처님 법의 등(燈)이 전해진 곳'이라 하여 전등사(傳燈寺)로 이름이 바뀌었다. '옥등'의 밝음도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하며, '전등'은 부처님의 지혜가 전해진 것을 뜻한다. 윤장대란 불교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돌릴 수 있게 만든 것으로, 윤장대를 한 번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이 있다고 한다. 전등사 윤장대는 보물 제684호를 똑같이 재현한 것이다. 윤장대를 세운 이유는 부처님 법이 사방에 널리 퍼지라는 의미와 우리 나라에 지세를 고르게 해 난리가 없고 비바람이 순조로워 풍년이 들고 태평성대..

경기도, 인천 2020.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