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79

2014 경주 남산 답사 1일차

경주 남산은 완전정복이라는 타이틀로 나홀로 테마 여행에서 2009년 12월에 2박 3일 코스로 1차로 다녀왔다. 그 때 남산의 모든 골짜기, 능선, 구석까지 산재된 불교 유적들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하지만 강행군으로 건강이 부쳐서 고생을 많이 했다. 이후로 유적에 관심이 있는 지인들이 국내에서 갈만한 곳을 추천하라고 하면 경주 남산을 추천한다. 경주 시내의 유명한 유적이나 유물은 한두번쯤 돌아보았어도 남산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경주 남산은 그 자체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이 되었을 정도로 시내 못지 않게 훌륭한 유적들이 많다. 지극한 불심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절벽 위나 바위의 마애불, 불탑에서 신라인들의 불심을 더 읽을 수 있는 지도 모른다. 이번의 남산 답사는 건강에 ..

경상도 2014.10.20

경주 양남주상절리군(파도소리길)

경주 남산완전정복 답사에 동행했던 분들은 덤으로 들른 몇개의 코스 중에서 울산 대왕암을 으뜸으로 꼽았다. 나는 경주 양남주상절리군(파도소리길)을 으뜸으로 꼽았고... 으뜸이냐 버금이냐를 떠나서 둘다 빼어난 절경들이다. 내가 파도소리길을 으뜸으로 꼽은 이유는 여유있게 걷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재작년부터 해솔길, 올레길, 구불길 등 테마가 있는 여행에 관심을 두고 있다. 실제로는 일행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경쟁하듯이 빨리 걷는데 좀 지쳐 있는 상태이다. 우리는 하서항에서 출발해서 읍천항 쪽으로 걸었다. 걷는데 걸린 시간은 넉넉하게 1시간 정도였고 길은 외길이다. 편도라 주차에 문제가 있어서 한분은 차를 가지고 우리의 종착지인 읍천항에 주차한 후 역행하다 중간에 만나서 합류하기로 했다. 가족이나 친구끼리..

경상도 2014.10.19

울산 어물동 마애여래좌상, 강동화암 주상절리, 경주 봉길해변의 문무대왕릉(대왕암)

사진 배치에 맞추다보니 여행 코스가 약간 이상하게 되어버렸다. 10/4. 울산 대왕암공원→ 주전 해안길→ 어물동 마애여래좌상→ 강동화암 주상절리를 보고 바로 곁에 있는 경주로 넘어갔다. 다음은 경주 양남주상절리군을 보기 위해 하서항 진리에서 바닷가를 따라 이어진 파도소리 길을 걸어 읍천항 벽화마을까지 갔다. 읍천항에서 차로 잠깐 이동하여 경주 봉길해변에 있는 문무대왕릉(대왕암)을 가까이에서 본 후 이견대로 이동하여 다시 대왕암을 멀리 바라보고 인근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감은사지 동서탑을 본 후 이틀째 경주 남산답사를 시작했다. 대왕암공원에서 아침을 먹으러 들른 곳이다. 울산에서 유명한 국밥집 골목이라고 한다. 서울의 해장국이나 순대국이랑 맛이 비슷한데 순대를 빼고 내장만 넣은 순대국 같다. 기름기..

경상도 2014.10.18

울산 대왕암

삼국통일을 이룩했던 신라 30대 문무대왕은 평시에 지의법사에게 말하기를 "나는 죽은 후에 호국대룡이 되어 불법을 숭상하고 나라를 수호하려고 한다." 하였다. 대왕이 재위 21년만에 승하하자 그의 유언에 따라 동해구의 대왕석에 장사를 지내니 마침내 용으로 승화하여 동해를 지키게 되었다. 이렇게 장사지낸 문무대왕의 해중릉을 대왕바위라 하며 그 준말이 '댕바위'로 경주시 양북면에 있다. 대왕이 돌아가신 뒤에 그의 왕비도 세상을 떠난 후에 용이 되었다. 문무대왕은 죽어서도 호국의 대룡이 되어 그의 넋은 쉬지 않고 바다를 지키거늘 왕비 또한 무심할 수가 없었다. 왕비의 넋도 한 마리의 큰 호국룡이 되어 하늘을 날아 울산을 향하여 동해의 한 대암 밑으로 잠겨 용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 뒤 사람들은 이곳을 지금의 대..

경상도 2014.10.17

울산 대왕암공원과 울기등대 구 등탑

2차 경주 남산 안전정복 답사(14. 10.3-10.5)를 갔다가 이곳과 경주 양남 주상절리군(파도소리 길)을 덤으로 들렀는데 일행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 절경이었다. 경주 남산은 이미 2009년 12월에 완전정복(!)을 한 차례 했기 때문에 몸이 부실한 나는 두 곳이 더 힐링이 되었을 정도이다. 울산이라면 현대조선이나 매연이 가득한 공업도시가 연상되어서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대왕암공원의 규모와 울창한 해송숲을 보고 놀랐다. 더 놀라운 것은 대왕암공원 끝에 붙어있는 대왕암(대왕바위)이었다. 대왕암은 경주 봉길리에 있는 문무대왕 수중릉으로 알려진 대왕암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문무대왕비가 사후에 용이 되어 바다에 잠겼다는 울산의 대왕암은 경주의 대왕암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규모가 크고 경관이 아름..

경상도 2014.10.16

창녕 우포늪2

나무배도 떠 있고, 아름드리 나무들도 몇 그루 있어서 늪과 잘 어울리는 곳은 도대체 어디 쯤이기에 나는 못 보았을까? 남들 사진에 멋있게 나와있던데... 다른 이들의 글을 보니 사람보다 키가 큰 갈대숲이 무성하고 나무배도 있는 곳은 소목마을에서 진입한다고 했다. 우리는 우포늪 생태관에서부터 우포늪(소벌)을 위주로 보는 대대제방 쪽으로 갔으니 4시간 안에 그곳을 보는 것은 무리였다. 만약 내가 일행을 제대로 따라붙었다 해도 먼저 간 일행들이 갈대밭을 헤치고 나가지 못해 다른 길로 방향을 틀었으니 결국 당시에는 사진 속에 보이는 멋진 곳을 가기에는 불가능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지포(모래벌)에만 있는 줄 알았던 가시연꽃은 목포늪(나무벌)에도 있었다. 주로 목포늪과 쪽지벌에서 촬영한 사진들이 우리가 흔히 ..

경상도 2013.10.13

창녕 우포늪1

일반적으로 '우포늪'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하나의 늪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우포늪'은 일반적으로 우포늪, 목포늪, 사지포, 쪽지벌의 4개의 늪을 묶어서 말한다. 중앙의 우포늪(소벌)을 기준으로 왼쪽의 가장 작은 늪은 쪽지벌, '옥천리'를 지나는 방향의 늪은 목포늪(나무벌), 주매리와 소야리 사이에 위치한 늪은 사지포(모래벌)이다. 우포늪은 국내 최대의 자연늪으로 천연의 자연경관을 간직하고 있어 자연환경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창녕군 대합면, 이방면, 유어면에 걸친 70만평의 광활한 늪지에 부들, 창포, 갈대, 줄, 올방개, 붕어마름, 가시연꽃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원시적 저층이 그대로 간직된 천연늪에서 곤충, 물고기, 새 등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여 동식물의 천국을 이루고 있..

경상도 2013.10.13

영주 부석사 - 조사당과 사과 따기 체험

부석사 무량수전에서 시간을 너무 지체한 나머지 내가 동탑 앞에 있을 즈음에 대충 응진전, 취현암까지 둘러봤음직한 일행들이 내려가고 있었다. 매번 일행에 뒤처지는 나를 보면서 내가 유별나게 동작이 굼띤 것인지 일행들이 상대적으로 빠른 것인지 잣대질을 한번 해봤다. 부석사에 있는 3기의 탑중에서 무량수전 동쪽의 3층석탑만 보물이다. 규모가 천왕문 너머의 탑보다 크고 불국사 석가탑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원래 화엄종찰에는 탑이 없는데 부석사에 탑이 3기나 있는 것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주변의 폐사지에서 옮겨왔기 때문이다. 마침 사진을 찍은 각도가 탑과 일직선 상에 놓인 석등에 눈길이 갔다. 위치가 그래서였는지 처음엔 탑의 특이한 부속물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석등에서 가장 중요한 화사석이 없어지고 지대석,..

경상도 2012.12.08

영주 부석사 - 안양문에서 선묘각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사찰로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도량이다. 의상대사는 원효대사와 함께 당나라로 유학길에 나섰다가 원효대사는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깨달은 바가 있어 유학을 포기하고 신라에 남아 참선으로 도를 얻고자 했고, 당시 선진 불교국가였던 당나라에서 유학을 제대로 한 의상대사는 후에 신라에 돌아와 경전으로 도에 접근하는 화엄종을 널리 편 셈이다. 당나라 유학시절에 의상을 사모하던 선묘라는 여인이 의상대사가 귀국할 때 용이 되어 신라까지 따라와서 신축 중이던 부석사 근처에 숨어든 도적떼를 바위로 변해 물리치고 눌러 앉았는데 그 바위가 무량수전 뒤의 부석이라는 내용이 삼국유사에 전한다. 부석사란 절 이름도 그 바위에서 유래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지금 남..

경상도 2012.12.04

영주 부석사 - 입구에서 범종각

영주 부석사는 지난 10월 27일에 봉화 청량산과 묶어 다녀왔는데 워낙 이야기거리가 많아 글을 올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부석사에 대한 자료를 대충 찾았는데도 A4용지로 14쪽이었다. 부석사 입구 주차장에서 내린 후 어디로 가야 부석사인지 감이 안 잡혀 잠시 헤맸다. 오른쪽으로 사람들을 따라 가니 부석사 안내판이 있고 시골길 복판에 일주문이 서있었다. 보통 사찰은 산 중턱 이상에 있기 마련인데 상식을 깨는 상황이었다. 일주문을 지나자 길 양쪽의 은행나무들이 막바지 단풍잎을 비바람에 우수수 떨구고 있었는데 전국에서도 소문난 가로수길이라고 한다. 당시 서울은 단풍이 들락말락 하는 시기였다. 푸른 탱자나무와 붉은 단풍이 이어지고 보물 제255호 당간지주가 보였다. 부석사 창건 당시 즉, 신라 문무왕 때 세운 ..

경상도 2012.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