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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사관학교 화랑대연병장

일반인들이 육군사관학교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육사 출신의 대통령들과 연병장이 아닐까 한다. 연병장은 훈련하는 운동장 쯤으로 해석하면 맞을까? 육사 안내도를 보니 연병장(정식 명칭은 화랑대연병장)보다 더 큰 3체련장도 있고 화랑구장이란 곳도 따로 있었다. 육사 안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이 기념탑과 연병장이었다. 육군박물관에서 나오면 탁 트인 연병장 쪽으로 강재구소령 동상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1965년 10월 4일 월남파병을 앞두고 맹호부대 훈련장에서 부하가 실수로 떨어뜨린 수류탄을 안고 산화해서 부하를 구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육군장병의 성금으로 건립한 동상이라고 한다. 불신의 시대를 지나면서 강재구소령 사건(?)은 조작된 것이라는 풍문도 한 때 떠돌았는데 안타깝고 고인에게 면구스..

서울특별시 2012.12.29

괴산의 여우숲2

여우숲에서 더위로 잠 못이루고 뒤척이다 아침에 산책을 나갔을 때 본 안개에 잠긴 숲은 정말 특별했다. 그마저 없었다면 여우숲에 대한 인상은 많이 나빴을 것이다. 생태학교라는 점과 그것을 세운 분의 뜻은 평소에 나도 좋아하던 것들이다. 그런데 여우숲을 다녀온 후 일행들의 반응은 썩 좋지 못했다. 내가 느낀 것처럼 불편하고 낯설었기 때문이었을까? 도회를 벗어난 생활이 불편한 것도 알고 시골에서의 생활이 다소 불편함에도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좋은 것이 많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여우숲이란 게 무엇인지 모르고 갔지만 하룻밤을 묵고난 후에도 수긍이 잘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 여우숲을 만드느라 개간(?)한 숲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입구에 숙박업소로 보이는 시설들이 다수 완성되었거나 진행 중이었다. 숲의 산책..

충청도 2012.12.26

괴산의 여우숲1

운전을 좋아하지 않다보니 남과 함께 하거나 얹혀가는 여행이 대부분인 나는 이상하게 충청북도와는 인연이 없었다. 이번 여름, 가만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에 직장동료들과 드디어 충북 칠성면에 있는 여우숲을 갈 수 있었다. 출발하면서도 도대체 '여우숲'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이도 알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여우가 사는 숲인가? 우리나라에 여우가 있었나? 궁금함이 꼬리를 물었다. 충주호에서 유람을 하고 괴산에서 저녁을 먹은 후 일행 대부분은 2차로 노래방을 갔지만 나는 전날의 과로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어서 숙소가 있다는 여우숲 선발대(?)로 나섰다.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산길에서 길을 못찾아 헤매기를 몇 번, 여우숲 주인이라는 분과 겨우 통화가 되어 마중나오는 길목에서 만났다. 보이는 것이라곤 털털대..

충청도 2012.12.21

육군사관학교 탐방2 - 육군박물관

육군사관학교를 탐방한다는 자체가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나를 가장 만족시킨 곳은 육군박물관이었다. 또 갈 기회가 있다면 이번에 본 것을 토대로 궁금했던 것을 더 심도 있게 보고 싶다. 그 만큼 박물관 안 전시물의 양이나 질이 훌륭했다. 그런데 왜 '육사박물관'이 아니고 '육군박물관'인가? 그것은 '육사'라는 한정된 테마로 박물관을 열면 육사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내용이 한정되어서 좀더 폭이 넓고 역사가 긴(나라를 세우는 순간 군대의 역사도 함께 한다.) '육군'을 주제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육사박물관'이 아니라 육사 안의 '육군박물관'이다. 육군박물관에 들어서면 먼저 박정희대통령이 탔던 리무진 승용차가 눈에 들어오고 내부 계단 양쪽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이 이어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정확하게 제작..

서울특별시 2012.12.16

육군사관학교 탐방1

군부대는 갈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육사는 처음이었다. 이번의 육사 탐방은 개인적으로 간 것이 아니어서 절차는 잘 모르겠으나 2주 전에 인터넷으로 신청을 하면 방문이 가능하다고 한다. 방문하면 육사 측에서 안내를 하는 분이 나온다. 내게 육사는 군 출신 대통령들, 정치적인 출세 라인 등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도 있고, 당당하고 패기 넘치는 군인 본연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있기도 하다. 지금은 쿠데타로 권력을 쥔 과거의 육사 출신 대통령들이 물러난 마당이기 때문에 육사 본래의 이미지로 비교적 편안하게 받아들여진다. 그 날의 답사는 태릉, 육사, 불암산 학도암마애여래좌상을 묶은 코스였는데 태릉은 이미 여러 차례 답사를 했고 마지막 코스인 마애불은 덤덤한 입장이었다. 동호회에서 한꺼번에 여러 코스를 묶은 답사를 할..

서울특별시 2012.12.13

남산 북측순환도로의 늦가을 풍경

이 내용을 여행에 넣어야 할지, 답사에 넣어야 할지 잠깐 고민을 했다. 블로그의 카테고리는 대단한 의미를 두고 분류한 게 아니라 카페에서 블로그로 기존의 글을 끌어오면서 임시로 분류한 것이다. 다른 이들의 블로그도 들여다 봤지만 너무 세분하다보면 어수선해서 글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딸이 임의로 분류한 대로 단순하게 놓아두기로 했다. 그랬더니 더러 애매할 때도 있고 아쉬울 때도 있다. 그래도 복잡한 게 싫어서 보는 분들의 불편함을 무릅쓰고 당분간 놓아둘 예정이다. 남산 북측순환도로는 어쩌다보니 1년에 한번은 행사 차 들르게 된다. 업무로 들를 지언정 서울에 이렇게 걸을 만한 도로가 있다는 사실에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 공교롭게 시절이 대부분 늦가을이나 초겨울인데 남산 북측순환도로의 나무..

서울특별시 2012.12.12

한국의 집과 전통결혼식

-≪한국의 집에 있는 안내문≫-한국의집(KOREA HOUSE)은 내,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전통문화를 홍보하기 위해 지어진 복합문화공간으로, 전통음식, 전통공연, 전통혼례, 전통문화상품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전통한옥입니다. 조선시대 세종대왕 때 집현전 학자로서 사육신의 하나였던 박평년의 사저터였으며, 대한민국 정부 수림 후에는 국내, 외 귀빈들을 위한 영빈관으로 활용된 곳입니다. 1980년 현재의 한옥을 신축하고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보존을 목적으로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의집 건물은 경복궁의 자경전을 본떠서 중요무형문화재 대목장 신응수가 지은 해린관을 비롯하여 문향루, 녹음정, 청우정으로 조성되었으며 양반가의 한옥에 궁중건축을 가미하여, 격조 높은 한국미의 원형을 두루 간직한 전통..

서울특별시 2012.12.10

영주 부석사 - 조사당과 사과 따기 체험

부석사 무량수전에서 시간을 너무 지체한 나머지 내가 동탑 앞에 있을 즈음에 대충 응진전, 취현암까지 둘러봤음직한 일행들이 내려가고 있었다. 매번 일행에 뒤처지는 나를 보면서 내가 유별나게 동작이 굼띤 것인지 일행들이 상대적으로 빠른 것인지 잣대질을 한번 해봤다. 부석사에 있는 3기의 탑중에서 무량수전 동쪽의 3층석탑만 보물이다. 규모가 천왕문 너머의 탑보다 크고 불국사 석가탑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원래 화엄종찰에는 탑이 없는데 부석사에 탑이 3기나 있는 것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주변의 폐사지에서 옮겨왔기 때문이다. 마침 사진을 찍은 각도가 탑과 일직선 상에 놓인 석등에 눈길이 갔다. 위치가 그래서였는지 처음엔 탑의 특이한 부속물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석등에서 가장 중요한 화사석이 없어지고 지대석,..

경상도 2012.12.08

영주 부석사 - 안양문에서 선묘각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사찰로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도량이다. 의상대사는 원효대사와 함께 당나라로 유학길에 나섰다가 원효대사는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깨달은 바가 있어 유학을 포기하고 신라에 남아 참선으로 도를 얻고자 했고, 당시 선진 불교국가였던 당나라에서 유학을 제대로 한 의상대사는 후에 신라에 돌아와 경전으로 도에 접근하는 화엄종을 널리 편 셈이다. 당나라 유학시절에 의상을 사모하던 선묘라는 여인이 의상대사가 귀국할 때 용이 되어 신라까지 따라와서 신축 중이던 부석사 근처에 숨어든 도적떼를 바위로 변해 물리치고 눌러 앉았는데 그 바위가 무량수전 뒤의 부석이라는 내용이 삼국유사에 전한다. 부석사란 절 이름도 그 바위에서 유래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지금 남..

경상도 2012.12.04

영주 부석사 - 입구에서 범종각

영주 부석사는 지난 10월 27일에 봉화 청량산과 묶어 다녀왔는데 워낙 이야기거리가 많아 글을 올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부석사에 대한 자료를 대충 찾았는데도 A4용지로 14쪽이었다. 부석사 입구 주차장에서 내린 후 어디로 가야 부석사인지 감이 안 잡혀 잠시 헤맸다. 오른쪽으로 사람들을 따라 가니 부석사 안내판이 있고 시골길 복판에 일주문이 서있었다. 보통 사찰은 산 중턱 이상에 있기 마련인데 상식을 깨는 상황이었다. 일주문을 지나자 길 양쪽의 은행나무들이 막바지 단풍잎을 비바람에 우수수 떨구고 있었는데 전국에서도 소문난 가로수길이라고 한다. 당시 서울은 단풍이 들락말락 하는 시기였다. 푸른 탱자나무와 붉은 단풍이 이어지고 보물 제255호 당간지주가 보였다. 부석사 창건 당시 즉, 신라 문무왕 때 세운 ..

경상도 2012.12.04